- 기독신문에 이런 보도가 나올 만큼 한국교회는 지금 심각한 홍역을 치르고 있다.
새벽마다 아내와 맑은 공기를 가르고 있다. 4시 15분에 집을 나선다. 나는 운전석에 아내는 조수석에 자리를 잡는다. 요즈음은 최재희 전도사를 먼저 태우고 허명자 권사 집으로 간다. 최 전도사가 부임하기 전에는 허 권사만 픽업을 했다.
새벽기도의 시간에 자신의 자리를 잡고 기도하는 사람이 허 권사이다. 그러나 교회까지 걷기에는 좀 거리가 된다. 그럼에도 허 권사는 마치고 갈 때는 걸어서 간다. 최 전도사도 귀가 시에는 걸어서 돌아간다. 특별히 시간을 내서 운동하기 어려우니 그리 하는 것이다.
새벽공기를 가르며 교회로 오자면 여러 교회들을 통과한다. 어떤 교회는 새벽기도회 시간을 가지지 않는 듯 조용한 교회가 있다. 그 시간에 불이 전혀 들어와 있지 않은 것이다. 연수구 관내 교회의 절반 이상이 새벽기도회가 없음을 확인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대단히 부러운 한 교회가 있었다. 우리교회 근처의 도로에 새벽시간이면 자동차가 퍼레이드를 한다. 줄잡아 40대 정도는 된다. 이들이 새벽기도회에 참석하기 위해 차를 가져 온 것이다. 이 교회는 다른 지역에서 우리 교회 가까이로 이동을 했다. 서구 가정동에서 이곳으로 이전한 우리교회와 같은 경우이다.
우리교회는 이동 후 재미를 보지 못했지만 이 교회는 대단히 안정된 교회로 성장을 했다. 이 교회를 개척한 목사는 은퇴를 하여 원로목사가 되었다. 주변의 성도들을 대할 때마다 이 원로목사에 대한 칭송이 자자했다. 신앙인품이 좋기로 소문이 나 있었던 것이다.
그후 이 교회에 대한 소식은 잘 알지 못했다. 교단이 다른 점도 있지만 내가 이런 면에서 정보가 어두운 편이다. 그러나 최근에 이 교회에 대한 소식을 여러 통로를 통해 듣게 된다. 후임목사가 재정관리를 투명하게 하지 못해 교회에서 나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성도들은 아픔을 겪었지만 교회를 위해 지혜롭게 처리를 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시 목사가 취임을 했지만 여전히 교회가 평안하지 못하다는 소문을 들었다. 같은 목사로서 마음이 대단히 아팠다. 이런 소식은 비단 이 교회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고 여러 교회에서 들려오고 있는 일상적인 소식이다.
2016년 9월 3일자로 발행된 인천기독교신문 제 491호 9면에는 ‘담임목사 부임 후 어려움에 처한 인천0000교회’라는 제목의 글이 게재되었다. 부제는 주일마다 교회 앞 용역업체와 성도 간 대치라고 붙어 있었다. 기독신문에 이런 보도가 나올 만큼 한국교회는 지금 심각한 홍역을 치르고 있다.
전기한 교회의 후임목사는 문제가 되자 교회를 떠나기라도 했다. 그나마 다행스런 일이다. 그러나 그 후임 목사는 교회를 지키고 있고 대신 성도들이 떠나고 있단다. 들리는 정보마다 다소 차이는 있지만 분명한 것은 교인들 상당수가 교회를 떠난 것은 분명하다.
더욱 더 확실한 것은 새벽기도시마다 그렇게 많이 주차되어 있던 차량들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그 도로에 한두 대가 보일까 말까 하는 정도이다. 아내와 이 도로를 지나면서 교회가 참으로 큰 시험이 빠져있음을 실감한다고 했다.
이 교회에 오랫동안 출석한 한 성도와 대화를 했다. 장로들의 마음을 움직일 정도의 위치에 있는 성도라 판단하여 상황을 물었다. 이 성도는 “저는 이미 교회를 떠났습니다. 은혜를 받으러 교회에 가는 데 갈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으니 그리 결정을 한 것입니다.” 라는 답을 돌린다.
누가무어라 해도 그 교회를 지켜야 할 성도라고 여겼는데 그의 결단은 의외로 싱거웠다. 이 교회를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함은 당연한 일이다. 우선 새벽마다 부러워했던 일을 돌이켰다. 외형적인 것을 보고 이런 마음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아울러 교회에 이런 아픔이 내재되는 것은 성도들의 문제보다 목사의 문제란 것이다. 이 교회도 목사의 문제로 보인다. 원로목사가 담임을 할 때는 평안한 교회였다. 그 목사는 존경을 받고 교회를 떠났고 현재도 그런 상태에 있다.
그러나 후임들이 문제를 일으킨다. 이제 어쩌면 이 교회는 회복되기 어려운 지경으로 들어가는지 모른다. 헌금이 줄어 교회의 관리조차도 하기 어려운 형편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런 극한 상황임에도 목사는 대안을 내놓지 않는다. 설마 교회당만 남겨 자기 것으로 차지하려고 하는 것은 아닐 것이라 믿고 싶다.
이런 일이 더 이상 지상교회에서 없기를 바라고 있다. 아울러 이 교회가 이전의 교회로 회복되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다. 다른 교회의 망가짐으로 혹시라도 우리교회가 득을 본다는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런 마음이 든다면 나는 회개의 대상이 되는 목사가 될 것이다.
우리교회도 그 교회도 하나님의 교회란 생각이다. 목사는 하나님의 교회를 맡은 사자일 뿐이다. 따라서 청지기 의식으로 교회를 이끌어야 한다. 초원교회는 문제는 있었지만 믿음으로 지켜진 교회이다. 고난을 잘 통과한 교회이다. 이제 열매만 맺을 시기를 맞이했다.
문제가 있다면 나는 언제든지 교회를 떠날 준비가 되어 있다. 목사이기 때문이다. 아니 초원교회는 나의 교회가 아니고 주님의 교회이기 때문이다. 교회에 문제가 발생한다면 상당부분 목사의 책임이다. 그렇지 않아도 교회의 부흥이 멈춘 시대이다. 이런 시기에 이런 잡음이 일어나는 교회를 특히 목사를 보면 마음이 더욱 아프다. 교회는 목사의 직업장소가 아니다. 사명을 감당하는 장소일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