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안의 노인 성도나 바깥의 성도들이 노인 성도들이 이렇게 하나둘 천국으로 갔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결국 아브라함처럼 더 나은 본향을 바라보게 된다.
1998년에 비로소 나의 이름으로 아파트를 등기하게 되었다. 어느 성도와 맏형 그리고 어머니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초원교회 담임목사로 사역할 시기였기에 약간의 은행 채무는 교회에서 이자를 부담해주는 형식이었다.
당시 아파트 특히 우리 통로 앞에 경비실이 있었다. 두 명의 경비원이 24시간씩 교대로 근무했다. 교회를 오가면서 자주 경비원들을 대했다. 그때마다 목사로서 갖출 예의를 갖추었다. 특히 아내를 통해 이들과 사랑을 많이 나누기도 했다. 그러면서 우리 부부는 경비원들을 전도하는 것이 우리가 여기에 사는 의미 중 하나라고 대화했다.
그 당시는 경비원에 대한 갑질 문제가 사회의 큰 이슈로 등장하기 전이었다. 그러나 주민 중 더러 경비원들을 경시하는 이도 있었다. 이따금 택배를 찾으러 경비실을 찾으면 내가 목사란 점을 생각해서인지 “목사님, 좀 가진 것이 있다고 우리 같은 이들을 무시하는 이가 있어요.”라고 하소연했다.
자신의 기분을 내게 지나치는 말로 호소한 것이지만 그 속에 그가 가진 마음의 탄식이 담기어 있음을 충분히 감지했다. 2023년 요즈음은 노령화 사회가 가속되어 서울대학교의 박사학위를 소지한 사람도 은퇴하고 놀기가 싫어 경비를 서는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만큼 주민들보다 경비원들의 수준이 높아졌다는 것을 지적한 보도였다.
이 아파트에서 정확하게 20년을 살고 2018년에 이 아파트를 떠나기 전에 여러 경비를 대했었다. 그런데 전기한 두 경비원이 차례로 그만두게 되었을 때였다. 박명천, 유주석 이란 경비원이었다. 이 당시 나는 교회가 위치한 상가의 번영회장직을 맡고 있었다.
상가의 이권이 달려있어 두 부류가 불화하다가 목사가 공정하게 운영을 할 수 있다고 여겨 청하여 맡은 것이다. 그리하여 상가의 야간 경비원으로 일하던 이가 그만두게 되어 박명천 씨에게 권하였더니 나이 들었다고 갈 데도 없었다며 감사하게 받아들였다. 그는 근무하면서부터 주일에는 교회로 나와 예배까지 드리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그는 상고 출신으로 당시로서는 지식인이었다. 2년여 경비원으로 일하였을 때 마침 관리소장이 공석이 되었다. 나는 그의 신앙과 성실함 그리고 능력을 들어 소장 대행으로 천거하여 관철을 시켰다. 그가 소장이 될 무렵 마침 유주석 아파트 경비원도 노령으로 사직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가 상가의 야간 경비원으로 일하게 되었다.
이때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만 하나의 어려움이 있었다. 야간 경비가 소장을 무시하는 것이었다. 과거에 같이 근무한 경비원 출신이란 의식을 지우지 못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 역시 우리 교회에 출석하게 되면서 두 사람은 믿음으로 하나가 되어가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박명천 소장이 암이란 질병을 만나게 되었다. 병원에 입원했을 때 여러 차례 목사로서 심방을 했다. 그 아내와 자녀들을 대하면서 모두 신자인 것을 확인한 자리가 되었다. 이때 그 아내가 “평생을 전도해도 안 받아들였는데 목사님을 만나 교회에까지 나가게 되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라며 눈물의 감사를 한 것이 엊그제와 같다. 퇴근하면 자주 남편이 나와 아내에 대해 전하며 감사했다는 것이다.
그 후 시간이 좀 지나면서 근무하던 유주석 경비원도 입원하게 되었다. 그의 아내의 긴 질병 치레로 병원비를 벌어야 한다며 경비 생활을 길게 했었다. 그는 교회를 통해 많은 사랑을 받았다. 질병으로 일을 그 이상 못하게 되었고 교회는 사랑을 전하다가 그의 장례까지 책임을 졌다.
그는 7년 정도 교회에 출석했지만 단 한 차례도 다른 성도의 경조사에 참여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의 장례에 거의 모든 성도가 참석하고 위로하였다. 그것이 그와 마지막이었으나 어느 성도도 이를 아쉬워하지 않고 교회가 할 일을 특히 목사가 감당해야 할 사명을 잘 감당했다고 생각하며 감사하고 있다.
3월 16일 박명천 성도의 아파트 앞을 지나면서 전화를 했다. 코로나19로 소식이 좀 뜸하였었다. 더욱이 아픈 이후에는 그 아내가 출석하는 교회로 이동하였기 때문이기도 했다. 박명천 님의 핸드폰으로 여러 차례 전화했으나 받지 않았기에 틈이 생기기도 한 것이었다. 다행히 일반전화번호가 보여 걸었더니 그 아내가 받아 통화가 되었다.
“목사님, 너무나 감사합니다. 제가 사람 노릇도 제대로 감당을 못하면서 삽니다.”라며 시작했다. 2년 전에 귀천했으나 코로나19 시기인데다가 부담을 주는 것 같아서 연락도 하지 못하고 출석하는 교회의 목사가 장례를 집례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남편의 평생 은인이라며 감사의 말을 이었다.
교회 안의 노인 성도나 바깥의 성도들이 노인 성도들이 이렇게 하나둘 천국으로 갔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아브라함의 지상 삶이 나그네요, 외국인으로서 산 것이 생각났다. 결국 아브라함처럼 더 나은 본향을 바라보게 된다.
아파트 내 집에 출입할 때마다 대하던 두 노인을 전도하고 일자리를 제공하고 우리 교회에서 살다가 이제는 영원한 시온성에서 대할 날을 생각한다. 그러하니 지상에서의 나그네 의식은 남의 것이 아님을 다시 생각한다.
아내는 이들에게 교회의 행사나 집에서 맛난 것을 준비해 먹으면 사랑을 나누었다. 그런 아내가 지금 병원을 가까이하고 의사를 의지하면서 살고 있다. 이 땅이 아닌 위만을 바라보게 하시는 주님께 감사하며 오늘 하루도 믿음의 기록을 아내와 함께 남겨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