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에 나타난 선교원리(8:1-8)

                      

  사도행전에 나타난 선교와 교회확장의 과정을 예루살렘교회 (1:1-6:7, 결론 6:7), 교회가 팔레스틴 전역에 확장됨(6:8-9:31, 9:31, 교회확장이 안디옥에게 까지 미침(9:32-12:24, 12:24), 교회확장이 소아시아에 까지 미침(12:25-16:5, 16:5), 교회확장이 유럽에 까지 미침(16:6-19:20, 19:20), 교회확장이 로마에 까지 미침(19:21-28:31, 28:31)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사도행전에는 선교활동을 통한 복음의 확장 과정을 보여주는 동시에 사도 바울의 선교가 어떤 방식, 혹은 전략으로 전개되었던가를 보여 줍니다. 이것은 초대교회의 대표적인 선교사였던 바울의 선교전략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가장 우선하는 전략은 하나님(성령)의 인도를 받는 일이었습니다. 성령은 사도행전의 주체였으며, 주도자였습니다(16:6-10, 23:11 ). 이런 점에서 사도행전을 사도들의 행전이라기보다는 성령의 행전이라고 말합니다.


 둘째는 전략이란 편리한 혹은 안이한 선교방법의 축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입니다. 선교란 필요하다면 고난과 박해까지도 감수하는 것이며, 이것이 사도행전이 보여주는 전략입니다. 고난과 박해 자체가 하나님의 전략이었습니다(8:1-4, 11:19-21).


 하나님은 바울을 부르실 때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선교) 해를 얼마나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9:16)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울 자신도 디모데에게 복음을 인하여 죄인과 같이 매이는 데까지 고난을 받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메이지 않았다고 말하고(딤후2:9), 도리어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했습니다. 이런 기본적인 이해를 가지고 사도행전에 나타난 바울의 선교 원리들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선교거점(Mission station)의 확보

   

 안디옥교회의 창설은 바울의 3차례의 선교과정에서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예루살렘에 이어 두 번째로 세워진 안디옥교회는 최초의 이방교회로서 복음의 전초기지였습니다. 로마제국내의 제3의 도시로서 전 세계의 문물이 교류되는 교착지였던 안디옥은 고대의 상업 중심지였습니다.


 렌스키(Lenski)와 하스팅스(Hastings)는 이 당시 인구를 50만 명으로 추정하는데, 이 도시는 세계의 모든 사람이 왕래했던 동양과 헬라문명의 접촉점이자 헬레니즘적이고 로마적이며 유대적인 도시였습니다. 이 도시가 바로 기독교의 제2의 본거지”(S. Neil)가 된 것입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세계의 어머니 교회라면, 안디옥교회는 이방세계에 복음의 빛을 비추었던 이방의 어머니 교회였습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안디옥은 선교본부로서 그의 선교의 중요한 전진기지가 된 것입니다. 또한 로마 세계의 관문이었던 안디옥이 전진기지로 사용된 점도 특이할 일입니다.

 

 2. 대도시에서 소도시로

 

 바울의 선교여행은 안디옥을 거점으로 한 로마제국내의 대도시를 중심한 서진(西進)의 과정이었습니다. 바울의 선교여행이 대도시 중심이었던 것은 대도시 복음화를 통해 근접한 지역 소도시가 복음화 될 수 있는 전략적 위치 때문이었습니다.


  이 당시 로마제국의 도시는 그 주변도시의 정신생활과 경제생활을 지배하고 있었던 도시들의 제국이었습니다(S. Neil). 바울은 안디옥에서 아시아의 수도인 에베소로, 마게도냐의 수도인 빌립보로, 아가야의 수도인 고린도로 그리고 당시 세계의 중심지였던 로마로 서행(西行)의 과정을 밟아 갔던 것입니다.

 

 정리하면, 바울은 로마제국의 중요한 행정적 속주였던 4개 지방- 곧 갈라디아, 아시아, 마게도냐, 아가야 지방에서 집중 선교했습니다. 제국내의 주요 도시를 집중 선교하여 그곳을 또 하나의 선교거점(mission station)으로 삼아 근접한 지역을 차례로 복음화해가는 전략이었습니다. 바울이 방문했던 도시들은 로마행정의 중심지이거나 헬라문명의 중심지로서 복음화를 위한 전략적 도시들이었습니다.

 

 3. 회당중심의 선교

  

 허버트 케인은 그의 성경적인 기독교 선교학에서 바울의 선교를 회당중심 전략이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 받았으나(2:8) “첫째는 유대인에게요”(1:16)라고 한 그의 말처럼 유대인에게 먼저 나아갔습니다.


 그는 우선 회당을 복음 증거의 거점으로 사용했는데, 살라미 회당(13:5), 바시디아 안디옥 회당(13:14), 이고니온 회당(14:1), 빌립보 회당(기도처)을 찾았으나 찾지 못함(16:11-13), 데살로니가 회당(17:1), 베뢰아 회당(17:10), 아덴 회당(17:17), 고린도 회당(18:4), 에베소 회당(18:19) 등이 그것입니다.


  바울이 회당을 거점으로 삼은 이유는 회당에서 메시야의 오심과 사역에 관한 구약예언이 읽혀졌기 때문입니다. 당시 로마제국 내의 유대인 인구는 7-10%였는데, 회당을 통해 유대인과 이방인 개종자, 하나님을 두려워한 경건한 이방인 등 3종류의 사람들을 접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회당 선교가 불가능하면 다른 곳으로 옮겨갔습니다(18:7, 19:9). 회당은 바울선교의 징검다리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4. 팀 선교(Team Mission)

  

 바울의 선교정책은 동역자들과 함께 하는 팀 선교였습니다. 1차 선교여행 때는 바나바와 마가와 함께 했고, 2차 전도여행 때는 실라와 디모데(루스드라에서 동행) 누가(드로아에서 동행)와 함께 했고, 3차 전도여행 때는 누가, 디모데, 아볼로 등이 함께 했습니다.


 또 다른 동역자들로는 아시아까지 함께 가는 자는 베뢰아 사람 브로의 아들 소바더와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와 세군도와 더베사람 가이오와 및 디모데와 아시아 사람 두기고와 드로비모”(20:4) 등도 있었습니다.


 그 외에도 에바브라, 데마, 에바브라디도, 아굴라 브리스길라 등이 바울의 동역자로 팀선교의 조력자들이었습니다. 바울은 로마제국의 대도시들에 잠정적으로 체류하면서 그의 젊은 조력자들을 이용해서 대도시에서 주변 소도시로 복음을 확산시키는 방법을 사용한 것입니다.

 

 여기서 특별히 주목할 것은, 초대 기독교 복음 확장사에서 전기한 인물 외에도 익명의 충성된 전도자들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8:4). 1세기 말엽 이후, 특히 2세기 이후 가장 대표적인 기독교 중심지였던 로마, 알렉산드리아 등지에 복음을 전했던 전도자가 누구였던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5.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양으로(고전 9:19-23)

  

 복음의 본질은 천사라도 변질시킬 수 없으나(1:6-9) 바울의 증거의 형식은 다양했습니다. 그는 유대인에게는 유대인 같이, 율법 없는 자에게는 율법 없는 자같이처신하며 증거했습니다(고전 9:19-23). 이것은 토착화(Indigenization) 원리가 아니라 동일화(Idenfication) 원리입니다.


 바울은 풍속문제로 오해를 사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습니다. 디모데에게 할례를 베푼 것이나(16:3), 서원(誓願)을 하여 머리를 깍은 일(18:18)이 그 예입니다. 할례나 결례(潔禮)로서의 머리깍음은 율법에 속하여 더 이상 시행될 필요가 없었으나,


 유대인의 오랜 습관이었기에 잠시 이를 수용한 것입니다. 그의 설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항상 청중들의 필요에 따라 메시지를 전했고, 설교의 대상에 따라 각기 그 접근과 내용을 달리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설교를 통해 의도하는 바는 동일한 것이었습니다.


 예로서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유대인 청중에게 설교했던 내용인 사도행전 136-41절과, 아덴에서 헬라인과 헬라철학자들을 상대로 설교했던 사도행전 1721-31의 두 본문을 비교해 보면 이 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6. 양육을 통한 내적 성장

  

 바울은 특히 4가지 방법으로 피 선교지 교인을 양육하고 이들의 내적 성장을 도왔습니다. 첫째는 방문을 통한 양육이었습니다. 바울의 2차 전도여행은 제1차 전도 때 방문한 도시를 다시 방문했고 (15:36,41), 3차 전도여행은 제2차 전도여행 때 방문한 도시를 다시 방문하는 것이었습니다(18:23).


 바울은 여러 곳에 복음을 전해야 하는 바쁜 나날들이지만, 이미 방문하여 선교했던 지역을 다시 방문하였던 것은 저들을 양육시키기 위함이었습니다. 둘째는 사역자 파송을 통한 양육이었습니다. 사도바울은 자신이 직접 방문할 수 없었을 때는 그의 동역자를 대신 파송하였습니다.


 그가 에베소에 있을 때 디모데를 고린도에 파송한 일이나, 데살로니가에 디모데를 파송한 경우가 그것입니다. 셋째는 서신을 통한 양육이었습니다. 바울의 13권의 서신은 한마디로 양육 서신이었습니다. 바울은 그가 설립한 교회의 여러 가지 문제들과 저들의 영적 성장을 위해 서신을 보냈던 것입니다.


 넷째는 기도를 통한 양육이었습니다. 바울은 그가 복음의 씨를 뿌리고, 그가 접촉했던 교회와 성도들을 위해 기도했고, 이 중재의 기도는 바울의 중요한 양육 방법이었습니다. 에베소서 314-19, 빌립보서 19-10, 골로새서 19-12절 등이 그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어떻든 바울은 복음을 전한 교회들을 거듭 방문하여 격려하고 굳게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그의 부재 중에 계속 사역할 수 있도록 장로들을 세우고, 사역자들을 보내거나, 서신을 통해 양육하고자 했습니다. 물론 이러한 양육방법은 단계적이기 보다는 동시적으로 수행되었습니다.

 

 바울은 특히 제자훈련의 모범을 보여 주었습니다. 에베소에 체류했던 3년 중 2년간은 두란노서원에서 집중적인 제자훈련을 실시했습니다. 이곳에서의 2년간의 제자 양육을 통해 에베소 교회가 아시아의 중심교회가 되었고, 인근지역(골로새 등)에 복음이 확장되고, 계시록에 나오는 6개교회가 설립되었던 것입니다.

 

7. 자급선교 (Tent-making mission)

  

 바울과 그 일행들의 선교는 기본적으로 자급선교였습니다. 바울은 이 점을 여러 번 표명하였는데(20:33-35), 일하는 소에게 올무를 씌우지 말라 함으로 사역자에 대한 후원은 정당하고 사례금을 받는 것은 정당하지만 바울 자신은 직업을 통해 사역을 계속했습니다. 그의 사역은 전문인 선교의 시원이 되며, 동시에 그의 자급선교는 현대의 네비우스선교(Nevius Method) 원리의 정신적 연원이 됩니다.

 

이상과 같은 선교방법 혹은 원리들이 사도행전에 나타난, 바울의 선교 정책이었습니다. 오늘의 우리도 이런 7가지 원리를 활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아울러 선교는 말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선교는 희생이고 물질도 수반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선교를 위해 우리의 구별된 삶은 더욱 더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