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 기도하라 (마태복음 263646)


예수는 이 땅에 성육신하여 33년의 짧은 생을 살았습니다. 십자가를 지시기 전 한 주간을 수난주간이라고 합니다. 본문은 그 마지막 주간 중 목요일 밤 중에 일어난 이야기입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기도 후 예수는 대적들의 손에 체포당합니다. 그 후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까지는 불과 열 시간도 채 되지 않습니다. 이렇게 급속히 전개되는 마지막 고난의 과정을 목전에 두고 예수는 또 기도합니다. 곧 겟세마네동산에서 세 차례에 걸쳐 간절히 기도를 드린 것입니다

 

예수는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 마귀로부터 삼차에 걸친 시험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그 전에 사십일 간의 금식기도를 통해 무장했기에 넉넉히 승리했습니다. 주님은 항상 기도하는 생활을 몸소 실천하셨습니다(5:16).


오늘 겟세마네동산의 기도에서처럼 주님은 생애의 중요한 국면에 처할 때마다 기도로 준비하셨습니다. 그의 기도는 항상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만을 구했습니다. 오늘 기도하시는 주님은 제자들을 향해 깨어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26:41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라고 했습니다.


예수는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베드로와 세배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시며 고민하고 슬퍼했습니다. 그리고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홀로 외로이 서서 홀로 결정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오셨는데 세 제자들이 잠들어 있었습니다. 육체와 감정이 인내의 도를 넘어 영적긴장마저 해이해졌습니다. 자는 것을 보시고는 베드로에게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라고 하셨습니다. 한 시간은 문자적인 한 시간이 아니라 제자들이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기도시간을 의미합니다. 이어주신 말씀이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깨어 기도하라'는 명령은 이미 마24:4225:13에서 강조된 바 있습니다. 특히 오늘밤에 제자들이 배신할 것이라는 조금 앞서의 예고(26:31)는 그들이 기도해야 한다는 시급한 요청이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오직 기도만이 다가오는 '시험'에서 그들을 구해 줄 수 있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늘 깨어서 하나님의 능력을 구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갈대같이 약한 우리의 뜻은 쉽게 꺾이고 말 것입니다. 제자들은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여기도하지 못했습니다. 사실 육신의 약함을 극복하는 대안은 기도인데 말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면 그대로 성취하십니다.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습니다(1;3), 노아에게 세상을 물로 심판하시겠다고 하신대로 심판하셨습니다(7:1-24), 소돔과 고모라를 불로 심판하시겠다는 말씀대로 심판하셨습니다(18:23-29). 이사야 선지자에게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7:14), 700년 후에 그 말씀대로 처녀 마리아를 통해 아기 예수가 탄생했습니다(1:25). 하나님의 말씀은 변치 않는 진리이며 말씀하신 후 시간이 지나면 그대로 성취하신 역사가 됩니다.

 

. 깨어있지 않으면 시험에 듭니다.

26:41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성취가 된다고 했습니다. 당연히 베드로에게 주신 그 말씀도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주께서 잠을 자고 있던 베드로에게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깨어 기도하지 않으면 시험에 든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베드로는 육신의 피곤을 견디지 못해 잠을 잤습니다. 기도하지 않은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대로 베드로는 시험에 들었습니다. 이는 깨어 기도하지 못한 결과입니다.


1. 칼을 사용했습니다.

26;51예수와 함께 있던 자 중의 하나가 손을 펴 칼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귀를 떨어뜨리니라고 했습니다.


이 사람이 베드로인 것은 사도요한이 밝힙니다(18:10). 마태와 마가 그리고 누가가 이름을 밝히지 않은 것은 네로황제 당시까지 생존한 베드로의 안전을 고려한 이유입니다. 베드로가 사람에게 칼을 휘둘렀다는 것은 시험에 들었다는 것을 반증합니다. 예수를 잡으러 왔던 자들 중에 대제사장의 종인 말고의 오른편 귀를 칼로 쳐서 떨어뜨렸습니다. 베드로가 이런 행동 후에도 체포가 되지 않은 것은 주님께서 도로 낫게 하심으로 상황을 진정시켰기 때문으로 보입니다(22:51) 예수님은 이를 보고 칼을 갖는 자는 다 칼로 망한다고 책망하셨습니다.


결국 베드로는 칼을 사용함으로써 십자가의 길을 가시는 주님의 방해꾼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않고 자기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내 힘과 경험, 실력, 재물, 직분의 권한을 하나님의 뜻보다 앞세운다면 바로 그것이 칼을 잡은 우리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십자가의 능력 곧 보혈의 능력으로 하는 것입니다

 

2. 멀찍이 따라 갔습니다.

26:58베드로가 멀찍이 예수를 따라 대제사장의 집 뜰에까지 가서 그 결말을 보려고 안에 들어가 하인들과 함께 앉아 있더라고 했습니다.


베드로는 말고의 귀를 자르는 용기 있는 것과 같은 행동을 보였습니다(26:51). 그러나 그 후 바로 예수를 버리고 도망가는 비겁한 모습을 보였습니다(26:56). 용기와 비겁사이에서 망설이던 베드로가 시험에 든 현상은 예수를 멀찍이 따라가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늘 주의 곁에 있었습니다.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릴 때(8:49-56), 변화산에서도(17:1-8) 주님과 가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칼을 잡은 후로 주님과 거리감이 생겼습니다. 이는 깨어 기도하지 못한 결과입니다.


우리 신앙생활도 이와 같습니다. 화가 나서 다투고 나면 서로 간에 틈이 생깁니다. 기도의 자리가 싫어지고, 기도시간도 짧아지고, 예배드리는 것도 멀어집니다. 특별히 하나님과의 관계가 멀어지는 이유는 기도를 쉬는 죄를 범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에게 간구하는 모든 자에게 가까이 하신다”(145:18)고 하셨습니다. 기도는 예수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에 의지하여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결국 기도하는 자는 주님과 가까이 있는 성도입니다. 베드로는 이런 기도의 자리에서 멀어졌고 결국 이는 주님을 멀찍이 따르는 모습을 보인 것입니다.


3. 예수를 부인했습니다.

26:70베드로가 모든 사람 앞에서 부인하여 이르되 나는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겠노라 하며라고 했습니다. 72절에는 베드로가 맹세하고 또 부인하여 이르되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고 했습니다. 74절에는 그가 저주하며 맹세하여 이르되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곧 닭이 울더라고 했습니다.


베드로가 시험에 든 세 번째 현상은 예수를 부인했다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자신이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다고 자신 있게 말했습니다(26:35). 그러나 그 자신감은 모두 사라져버리고 사람들 앞에서 세 번씩 부인했습니다. 크고 단호한 음성으로 공개적인 부인을 한 것입니다. 예수와 자신의 관계성을 부인한 것입니다. 그것도 저주하며 맹세까지 한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자신을 그토록 사랑했던 주님을 그 사람이라고까지 말하며 부인하면서 위기를 모면하려 했습니다. 스승인 예수의 진실한 고백은 십자가로 향하고 있습니다(26: 39). 그러나 수제자인 베드로의 모습은 한없이 유약했습니다.


베드로의 세 차례의 부인은 자신의 생명을 구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정녕 그는 자신의 생명을 보존키 위한 신성 모독의 중한 죄악까지 스스럼없이 자행하고 만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고 했습니다(16:25).


베드로가 주님을 세 차례나 부인한 끝에 곧 닭이 곧 울더라고 했습니다. 베드로의 마지막 부인하는 고백과 더불어 닭 울음소리가 베드로의 귓전을 때렸습니다. 새벽이 되기 전 그 밤 동안 닭은 두 번이나 울어댔습니다(14:72). 한편 이 닭 울음소리는 베드로의 식어버린 마음을 돌이켜 참회의 눈물로 변화시킨 일종의 신선한 경종이었습니다.


믿음은 두려워하지 않고 어느 곳에서든지 나의 구주라 고백하는 것입니다. 누구보다 베드로에게는 이런 고백이 필요했습니다.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서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이라고 고백한 신앙이 지속되어야 했습니다(16:16).


주님은 베드로가 깨어 기도하지 못함으로 부인할 것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베드로의 믿음이 떨어지지 않도록 기도까지 해 주셨습니다(22:31,32). 이미 시험에 빠진 베드로는 칼을 사용했고 주님과 거리를 두었습니다. 그리고 강력하게 부인까지 했습니다. 이런 베드로는 닭 울음소리에 주의 말씀이 생각나 통곡하며 회개했습니다(26:75). 이는 가룟유다의 후회와는 본질적으로 달랐습니다(27:3). 베드로는 회개 후 갈릴리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자리에서 베드로의 사명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21:15-23).


교회초기의 권위 있는 자료를 인용하던 유세비우스는 베드로와 바울이 로마에서 네로 황제 박해 시 순교를 당했다고 했습니다. 그는 베드로와 바울의 순교시기를 A.D. 64년이라고 했습니다. 전승에 의하면 그는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죽었습니다. 베드로는 주님에게사단아 물러가라’(16:23)고 하는 책망을 받을 정도였으나 그에 대한 주님의 사랑과 훈련은 그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가 되게 했습니다(벧전1:1).


주님의 수제자인 베드로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게 됩니다. 믿음이 저하되면 시험을 이기지 못합니다. 그래서 주님의 말씀대로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은 마태복음 25장에서 열 처녀의 비유를 통해 깨어 있으라고 하셨습니다(25:1-13). 깨어 있는 것은 신랑이 오는 때를 멋대로 예측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과 성령에 붙들리는 것입니다. 말씀으로 역사하시는 성령의 인도를 따라 기도하는 신앙생활로 늘 깨어 있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