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께서 인도하는 대로 삽시다(13:15)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이 나아가는 길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없도록 열린 문을 두셨습니다(3:8). 가는 걸음이 형통케 되는 비결을 일러 주셨습니다. 주님과 동행하는 걸음입니다(39:2).


1편은 형통한 삶의 비결이 악인의 꾀를 쫓지 않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않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가운데 그 소리를 쫓아 살아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세상에는 모진 풍랑이 있습니다. 자기 지식과 재능, 수단만 믿고 안전하게 살아 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백성들에게 어떤 경우에도 안전하고 확실하게 보장 된 인도자 곧 예수그리스도를 붙여주셨습니다.


. 예수보다 앞서면 안됩니다

              

가는 길이 위험하고 불안할수록 신실한 인도자의 뒤를 따라서 걸어야 합니다. 성도는 어떤 상황 하에서도 예수의 뒤를 밟아 가는 사람들입니다. 14:4에는 시온산에서 어린양과 더불어 새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세상에서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들입니다. 신자 중 예수의 뒤에 서지 않고 먼저 나가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결국 큰 불행을 야기 시킵니다.

 

1. 불신앙의 행위

불신앙은 인도자 예수그리스도를 신뢰하지 않고 청종 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는 자기 자신을 과신하고 교만한 마음 때문에 생깁니다. 자기 부족을 알고 겸손한 마음을 가지는 사람은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순종합니다. 교만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자기의 행동을 앞세워 버립니다.


이스라엘 초대 왕 사울은 겸손할 때 왕위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교만한 생각이 들면서 하나님의 뜻을 외면하고 불순종의 과오를 범했습니다(삼상15:22-23). 그리하여 하나님은 그를 떠나 버리고 사울 왕은 악신에 이끌려 멸망했습니다(삼상18:10).


2. 예수 없이 홀로 가는 것

성도의 특징은 그리스도와 연합된 것입니다(15:4). 간혹 그리스도인이 예수 없이 자기 길을 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2:41 이하에 보면 요셉과 마리아가 유월절을 지키러 예루살렘에 올라갔다가 나사렛으로 돌아갈 때 예수를 버려두고 돌아갔습니다. 저들은 하룻길을 예수가 동행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뒤늦게 예수가 동행하지 않은 것을 알고 당황하고 큰 근심에 싸여 사흘길이나 도로 찾으러 갔습니다. 성도는 예수와 떨어진 채 자기 혼자 길을 가면 여러 가지 근심에 짓눌려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3. 불안하고 위태로운 걸음

J.Oatman 은 찬송가 491장에서 괴롬과 죄가 있는 곳’ ‘험하고 높은 이길을 싸우며 나아간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뜻하지 않은 곳에서 대적 마귀의 도전을 받습니다. 그래서 잠시도 안내자 없이 자기 길을 가면 안됩니다.


2:5 이하는 술람미 여인이 자기에게 찾아온 솔로몬을 박대하고 자기 혼자 밤거리에 나갔다가 행순 하는 자들에게 붙들려 옷을 벗기고 상하게 맞는 등 낭패를 당한 일을 기록했습니다. 예수를 멀리하고 자기중심으로 살겠다고 주장하는 성도의 실패를 비유한 말입니다. 마귀는 예수와 성도사이에 조그마한 틈만 엿보여도 순식간에 덮치며 넘어뜨리고 맙니다(벧전5:8).

 

. 주님은 좋은 인도자 

                

하나님은 성도를 눈동자같이 살피십니다. 모세는 광야 행군 중 하나님이 잠시도 멀리 아니하시고 그들의 뒤를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셨다고 했습니다(40:36-38, 32:10).


1. 주님은 양을 인도하는 목자입니다.

10:14는 예수는 자신을 선한 목자라고 했습니다. 231절 이하는 여호와는 나의 목자라고 했습니다.


성도와 예수님의 관계를 양과 목자의 비유로 설명합니다. 목자는 양을 지키고 보호합니다. 우리에 있는 양을 이끌어 인도합니다. 만일 양이 우리에서 이탈하면 사자와 이리의 밥이 됩니다. 15:3이하는 백 마리 양 중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아 나서는 목자를 봅니다. 목자는 양떼들의 앞을 가며 바른 길로 이끌어 줍니다. 양은 오직 목자의 뒤를 따르기만 하면 됩니다.

 

2. 주님은 제자들에게 바른 길을 일러주는 선생입니다.

13:13에는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는 3년 동안 제자를 가르쳤습니다. 선생 되신 예수를 따라오게 하기 위함입니다.

16:24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제자는 선생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 당연합니다.


12:2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예수를 바라보자고 했습니다. 여기 주는 앞서 가는 자’ ‘모범을 보이는 자입니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교훈을 통하여 올바른 가치관을 심어주셨습니다. 마땅히 행해야 할 생활의 모범을 보이셨습니다. 13:15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고 했습니다.


3. 주님은 전지 전능하신 보호자입니다.

안내자는 남보다 먼저 그 길을 가 보았거나 현장 답사를 하여 노정을 알고 있는 자입니다. 예수는 우리의 나아갈 길을 먼저 가신 분이고 세밀한 부분까지 알고 인도하시는 분입니다.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은 100세에 얻은 독자 이삭을 결혼시킬 때 자기 집에 있는 늙은 종 엘리에셀에게 분부하여 밧단 아람으로 가서 신부를 데려오게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엘레에셀에게 말하기를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내 아버지의 집과 내 고향 땅에서 떠나게 하시고 내게 말씀하시며 내게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이 땅을 네 씨에게 주리라 하셨으니 그가 그 사자를 너보다 앞서 보내실지라 네가 거기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할지니라”(24:7)고 했습니다.


주님은 언제나 우리보다 앞서 가십니다. 어떤 난관 장애물이 있어도 그것을 다 돌파하십니다.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가는 길을 인도하시고 홍해도 갈라지게 하시며 여리고도 무너지게 하듯이 자기 백성들의 행보를 열어주시는 분입니다(43:2).


4. 주님은 우리를 가장 존귀하고 영광스러운 자리로 인도하십니다.

요셉은 청소년 시절 파란만장한 시절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함께 하심으로 그가 형통한 자가되었다고 했습니다(39:2). 훗날 애굽의 총리로 영광스런 자리에까지 올랐었습니다. 이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인도였다고 요셉은 간증했습니다(50:20).


. 따라가는 방법

소돔성이 유황불로 멸망 받을 때 그 곳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자가 롯의 식구들의 손을 붙잡고 성 밖으로 이끄셨습니다. 구약시대에는 이런 방법으로 간혹 이끌어 내셨는데 오늘날은 간접적인 방법을 사용하십니다.

 

1. 말씀이 정한 길로 가는 것입니다.

성경은 가장 안전하고 성공적인 걸음이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히는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하나님은 그가 계시하여 주신 말씀으로 자기 백성들이 형통한 삶을 살아가도록 인도하십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길이나 또는 인격화하여 설명합니다.

119:133은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가 나아갈 바른 길이라고 했습니다. 20:32는 말씀이 능력이 있는 지도자라고 했습니다. 말씀의 인도를 받는 것은 부지런히 성경을 읽고 듣고 깨달아 그 말씀대로 실천하는 삶입니다.

 

2. 성령의 감화를 따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구원받은 성도의 마음을 성령으로 작용하시고 거기서 주님의 뜻을 분별하도록 일깨워 주십니다. 고전2:12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역사 하시는 성령의 감화는 우리의 마음을 통하여 전달됩니다. 이 마음은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고 정결하게 단장할 때 가능합니다. 5:16너희는 성령을 쫓아 행하라고 했습니다.


3. 적극적인 교회 생활을 통해 주님을 따라갑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목장이고 성도는 그의 양입니다. 목자는 양 무리의 문을 열고 양의 이름을 불러 점검하며 앞서 인도하는 자로 교회의 목사와 같습니다. 21:15이하에 부활하신 예수는 수제자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면 내 양을 먹이라고 했습니다. 베드로 자신은 예수께 양 무리를 위해 위임받은 목자라고 했습니다(벧전2:4).


양이 된 성도는 목회자의 인도를 받아 교회 생활에 열중해야 합니다. 교회 생활을 잘 하는 자는 목사의 인도를 잘 받는 자입니다. 13:17에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고 했습니다.

적극적인 신앙인은 신앙인으로서의 프로의식을 가진 사람입니다. 아마추어 신앙은 교회 나와서 두서너 달 하는 것이지 어떻게 10년을 믿어도 그 믿음이 아마추어요. 20년을 믿어도 신앙의 아마추어 수준을 못 넘어섭니까?


주일예배만 그것도 매주 출석하는 것도 아니고 한 달에 한두 번 출석하는 교인이라면 세월이 가도 말 그대로 교인이지 절대로 성도는 될 수 없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고 했는데 교회에 나와야 말씀을 듣죠. 교회 나와서도 말씀을 들을 때 딴 생각하지 않고 집중해서 그 말씀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며 들어야 합니다. 설교만 시작하면 자는 사람이 있습니다. 용하게도 설교가 끝나면 눈을 뜹니다. 그런 사람은 20-30년을 교회 다녀도 성도가 될 수는 없습니다.


건강한 교인이 되고 훌륭한 신앙생활을 하기 원한다면 반드시 적극적으로 교회생활에 참여하여 맡겨 주신 직책에 충성을 다하는 길밖에는 없습니다. 물론 교회활동을 하다 보면 상처도 받을 수 있고 때로는 부담이 되기도 하지만 그와 같은 부담은 교회활동이 우리에게 주는 신앙적인 유익과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잠언 144절에 "소가 없으면 구유는 깨끗하려니와 소의 힘으로 얻는 것이 많으니라" 는 말씀이 있습니다.


교회활동을 하지 않으면 부담도 없고 상처도 없어서 깨끗할지는 몰라도 그 부담스러워 보이는 교회활동을 통하여 얻는 유익이 더 많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뜨뜻미지근한 신자를 제일 싫어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열심을 내는 자를 기뻐하시나 무조건 일을 많이 벌이는 자를 좋아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가 이루실 놀라운 일들을 중심으로 대망하는 마음을 지닌 사람을 원하십니다.


우리들 자신과 교회를 위하여 적극적이고 열심 있는 교회활동을 하시는 여러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