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에 오신 예수(이사야53:1-12)

  

 

  이사야 전반부에서 다루고 있는 이스라엘의 바벨론 포로생활과 바벨론에서의 구원에 관한 이야기는 단순한 역사적 이야기에 머무는 것이 아닙니다. 바벨론의 구원이야기 안에는 보이는 않는 하나님의 큰 계획이 숨겨져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인류의 구원에 대한 계획입니다.

 

 이사야는 오늘 본문에서 드디어 그 계획의 본질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앞으로 오실 메시아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입니다. 앞으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오시는 그 분이 어떤 분이시며 또 어떤 모양으로 오시는지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53장은 구약에서 가장 가까이 만나는 신약입니다. 이사야는 자기 시대로부터 약600년 후에 오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너무도 자세하게 구체적으로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이사야 53장의 예언들은 신약 사복음서에서 그대로 이루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 보통 사람으로 오시는 예수

이사야 53:2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오시는 예수가 사람들 보기에 보통 사람과 같은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신다는 것입니다. 그는 왕가의 왕자로 오시지 않고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나사렛 동네에 오셨습니다. 1:46에 보면 빌립이 나다나엘을 만나 예수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나다나엘이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고 했습니다. 나사렛에서 난 예수는 구약에서 예언한 메시아가 아니라 나사렛의 보통사람이라는 말입니다.

 

 오늘 이사야는 미래적으로 구언하러 오시는 예수가 특별한 사람으로 오시는 분이 아니라 연한 순같이 나약한 인간으로 오시며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는보통 사람으로 오신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이 왜 중요합니까? 유대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매단 것은 예수를 단순히 나사렛의 보통사람으로만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알아야 하고 유대인들이 알아야 할 것은 우리 예수님은 그냥 보통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아로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구원자로 오셨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이것을 몰랐기 때문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는 죄를 저질렀습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었습니다(2:6). 그는 하나님이었습니다(1:1). 그는 만물의 창조자입니다(1:3). 그는 하나님과 동등이십니다(2:7). 그러나 오히려 자기를 비우고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으신 것입니다(1:14).


 창조자가 피조물의 형상을 취하신 것입니다. 만물의 주인이 만물의 종이 되었고 빛이 어두움에 오신 것이었습니다(1:9-10). 하나님이 죄인과 함께 거하고 잡수시고 주무셨습니다.

 

 이런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유대인들은 단순히 보통사람으로만 생각하고 메시아로 알지 못하고 십자가에 매달아 죽였던 것입니다. 이사야는 미래적으로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인지 바로 알고 그를 믿어야 한다는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 고난 중에 오시는 예수

이사야 53:3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라고 했습니다.

 

 이사야는 앞으로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 오시는 예수는 영광을 받으러 오시는 분이 아니고 십자가 고난을 받으시기 위하여 오신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이신 그가 자기 땅에 왔으나 자기 백성이 영접치 아니했습니다(1:11). 불신했습니다(53:1). 배척했습니다(53:2-3).


 그는 멸시를 받았고 싫어버린바 되었습니다. 태어나자마자 헤롯왕의 암살을 피하여 애굽으로 떠났습니다(2:14). 친족들, 동족들, 제사장, 장로, 서기관, 이방인까지도 그를 능멸했습니다. 그는 고향에서도 배척을 당했습니다(9:51-56).

 

 신약 사복음서를 보면 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앉은뱅이를 일으키시고 눈먼 자의 눈을 뜨게 하실 뿐만 아니라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고도 열두 광주리가 남는 기적을 보이실 때는 구름떼와 같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라다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죄인의 누명을 쓰고 십자가를 지게 되니까 어떻게 되었습니까? 이사야는 그는 ...사람들에게 버림받았다라고 했습니다. 즉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멸시를 받으니 그를 따르던 자들이 그를 버리고 떠나간다는 말씀입니다.


 그에게 은혜를 입은 자들이 그를 버렸습니다. “저를 십자가에 못박게 하소서!” 군중들이 외쳤습니다. 이런 멸시받는 메시야를 이사야는 사람에게 멸시를 당하는 자, 미움을 받는 자, 관원들에게 종이 된 자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49:7). 그는 천대받았습니다. 결국 그는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님이 받는 고난이나 멸시를 보고 예수를 떠난 자들이 누구입니까? 이사야의 예언을 모르는 사람들이요, 예수를 보통사람으로만 본 자들입니다. 예수님은 이사야의 예언대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고난을 받으러 오신 분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고난을 단순한 고난으로 보지 말고 그 고난 속에 있는 하나님의 숨은 뜻을 볼 줄 아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 의미를 아는 사람들은 오히려 고난당하시는 그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습니다. 뿐만 아니라 가슴을 치며 통회하는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 성도는 고난 중에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고난 중에도 감사하고 기뻐하며 하나님을 의지하는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Ⅲ. 구원자로 오시는 예수

이사야 53:6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라고 했습니다.

 

 말씀 그대로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가 잘못 행한 죄를 대신 책임지기 위해 오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바벨론에 포로된 자와 죄로 말미암아 영원히 죽을 수 밖에 없는 자들의 죄를 대신 지기 위해 오시는 예수님입니다. 그 말씀대로 오셨다는 것입니다.

 

 이사야는 535절에서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라고 했습니다.

 

 이 고백은 누가 할 수 있는 고백입니까? 이 고백은 이사야의 예언을 믿는 자와 그의 예언대로 이 땅에 오신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하는 고백인 것입니다.

 

 그의 고난당하심은 우리의 허물과 죄악 때문이라고 했습니다(53:5). 그가 가시에 찔리고 못에 찔리고 창에 찔림은 모두 우리의 죄악 때문입니다. 그가 상하고 채찍에 맞고 징계를 당한 것은 우리의 죄악 때문입니다.

 

 죄로 인해 지상의 모든 사람들은 고통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범죄한 인간으로 인해 땅도 저주를 받았습니다. 밭을 갈아도 열매를 내어주지 아니하고 가시와 엉겅퀴가 나서 곡식을 삼켜버립니다. 모든 질병과 근심, 괴로움, 죽음은 죄의 대가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고통을 당할 하등의 이유가 없습니다.

 

 그는 죄를 범치 아니했습니다(4:15). 그는 형벌을 받을 아무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는 징계를 받았습니다. 찔림을 받았고 상함을 당했습니다. 마침내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는 우리를 대신하여 고난을 당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그릇 행하여서 다 제 길로 갔습니다. 우리는 죄로 가득 차 있으며, 우리가 스스로를 구원할 어떠한 상태에도 있지 못한 것입니다. 이런 우리의 죄악을 여호와께서는 예수님이 담당하도록 하신 것입니다(53: 6, 고전15:3, 고후5:21). 그는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기 위해서 왔습니다(20:28). 예수님은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바 되었습니다(9:28).

 

 주님의 몸은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십자가는 최고 흉악범이 지는 형틀입니다. 세상 죄를 그의 몸으로 친히 지신 것입니다. 하나님이신 그가 친히 제물이 되어 죽었습니다. 목장에 있는 양이 제사장의 선택을 받아 제물이 되는 것처럼, 자기 백성의 죄를 대신 가지고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 화목제물이 된 것입니다.

 

 주님은 십자가상에서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23:34)라고 기도했습니다. 많은 사람의 죄를 지고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했습니다. 그 결과 우리 죄를 멀리 치워버렸습니다(103:12). 도말하고 사라지게 했습니다(44:22). 덮어버리신 것입니다(85: 2 ). 기억지도 않으신다고 했습니다(31:34).


 죄를 발견치 못하도록 해주신다고 했습니다(32:1). 죄를 죄로 인정치도 않으신다고 했습니다(4:8). 눈과 같이 양털 같이 희게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죄를 사유하시고 넘기시고 주의 발로 밟으시고 깊은 바다에 던져버리신다고 했습니다(7:18,19).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본질적으로 정죄함이 없습니다(8:1). 예수께서 우리 대신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공의가 만족되었습니다(6:23). 우리가 평화를 누리게 되었습니다(53:5). 우리가 나음을 입었습니다(53:5). 우리가 영생을 얻었습니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구원자로 오신다고 이사야가 예언하고 있습니다.

 

 이사야의 예언은 예수님 오시기 600년 전 예언입니다. 이사야의 예언대로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시고 사시고 돌아가셨습니다. 성도라면 누구나 그리스도를 구원의 주로 고백합니다. 처음 믿을 때에는 그 은혜에 대한 감사와 감격이 넘쳐납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 은혜를 당연한 것으로 여길 때가 많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으로써(고후4:10) 그리스도의 은혜에 붙잡힌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대속의 사랑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구원받은 성도라면 누구나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교회를 통해 채워야 합니다. 말하자면 구원받은데서 만족하지 않고 나아가 사명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받은 복음을 가르치고 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좀 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과 화목해지고 대속의 은혜를 체험할 수 있도록 복음의 도구로 사용 받아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이 시대를 사는 성도들의 멋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