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약적 삶의 좌절과 회복(2;8-16)



유대인들은 성경을 기록할 때 특별한 구조 즉 키에즘을 사용했습니다. 이는 성경본문의 구조를 바르게 파악함으로써 성경이 의도하는 참의미를 바르게 파악할 수 있게 합니다. 이런 구조로 기록된 룻기는 무엇보다 언약적 삶의 좌절과 회복을 다루고 있습니다.

 

A. 여인()들만 남았습니다(1:1~5). 룻기 13절에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이 죽고 나오미와 그의 두 아들이 남았으며라고 했습니다.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에 엘리멜렉과 나오미 사이에 두 아들 말론과 기룐이 있었습니다. 이들의 고향은 베들레헴입니다. 그러나 기근을 피해 모압 땅으로 왔고 그곳에서 이방 여인들인 오르바와 룻을 며느리로 맞이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남편인 엘리멜렉과 두 아들이 모두 죽고 여인들만 남게 되었습니다.


A`. 씨를 얻었습니다(4:7~22). 룻기 415절에 이는 네 생명의 회복자이며 네 노년의 봉양자라 곧 너를 사랑하며 일곱 아들보다 귀한 네 며느리가 낳은 자로다 하니라고 했습니다.

  룻과 보아스가 기업무르기를 통해 낳은 아들을 생명의 회복자라고 했습니다. 유다지파의 엘리멜렉과 두 아들 말론과 기룐이 다 죽었지만 새로운 씨 즉 다윗의 조부인 조부가 된 오벳이 출생한 것입니다.

 

B. 기업 무를 방법이 없다고 했습니다(1:6~14). 룻기 113절에 너희가 어찌 그들이 자라기를 기다리겠으며 어찌 남편 없이 지내겠다고 결심하겠느냐 내 딸들아 그렇지 아니하니라 여호와의 손이 나를 치셨으므로 나는 너희로 말미암아 더욱 마음이 아프도다라고 했습니다.


  나오미는 자부들이 만일 자신과 함께 가면 끝내 과부 신세를 면할 길이 없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습니다. 자신의 나이나 처지를 감안할 때 전혀 재혼(계대 결혼)의 가망이 없다는 것입니다. 만일 재혼을 하여 남편이 있다손 치더라도 자신은 늙었으므로 자식을 낳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또 낳는다고 해도 그 아이가 계대 결혼법을 이해하고 지킬 정도가 되려면 최소한 20년 이상을 기다려야 할 터이니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말입니다. 나오미는 이들이 모압 여인이어 비록 이들이 이스라엘로 간다고 할지라도 계대 결혼 이외에는 도저히 재혼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B`. 기업 무를 자기 의무를 거부했습니다(4:1~6). 룻기 46절에 그 기업 무를 자가 이르되 나는 내 기업에 손해가 있을까 하여 나를 위하여 무르지 못하노니 내가 무를 것을 네가 무르라 나는 무르지 못하겠노라 하는지라고 했습니다.

기업무를 자란 상실한 것을 회복해 주는 자를 말하는데, ‘기업무른다는 말은 속량한다혹은 구속한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고엘제도입니다. 고엘이 된 자는 가난한 혈족의 땅을 도로 사주어야 했습니다(25:25, 26). 부당한 피해를 당한 친족을 위해 복수할 책임이 있었습니다(35:12, 19, 21). 친족의 미망인과 결혼하여 대를 이어 주어야 함은 물론 심지어 친족의 죗값을 대신 받기까지 했습니다(5:8).

이런 보호자가 된 가까운 친족이 바로 고엘입니다. 가장 가까운 친척이 속량할 마음이 없으면 그 다음으로 가까운 친족이 기업 무를 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룻의 경우 가까운 친족은 자신의 손해 때문에 기업무르기를 거절한 것입니다.

 

C. 시모를 따르는 룻입니다(1:15~18). 룻기 116절에 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라고 했습니다.

 

 시모 나오미가 아들들이 죽자 두 자부에게 친정으로 돌아갈 것을 권하면서 자신에게는 더 이상 소망이 없으므로 고향으로 가서 재혼하여 편히 살라고 합니다. 룻이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면 재혼하여 남은 생 동안은 편안한 안식처를 얻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의 부모, 친척, 그리고 섬기던 신을 떠나 아무 희망도 없는 시모를 따라가겠다는 말입니다.

 

이런 룻의 결심은 단순한 애정이나 효성을 초월한 것입니다. 완전한 자기희생을 감수한 위대한 신앙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고대세계에서는 자기 종족이 섬기는 신을 버리는 것은 본토나 친척, 아비 집을 떠나는 것 이상으로 극히 어려웠습니다. 특히 부족국가를 이루며 살던 당시에는 부족 신을 떠나 다른 신을 섬기는 일이 흔하지 않았습니다.

  

 룻은 자신의 확고한 신념을 보여주기 위해 이스라엘 사회에서만 발견되는 독특한 서약의 형태로 여호와의 이름을 들어 맹세했습니다(삼상 3:17, 25:22, 왕상 2:23). ‘여호와란 성호는 언약공동체인 이스라엘 시회에서만 사용하는 고유한 신 명칭이었습니다(왕상 19:2). 그런데 이방 여인인 룻이 이 말을 사용했다는 것은 룻이 시모 나오미의 신앙을 따라 자기 나라 모압신을 떠나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신앙을 가졌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C`. 시모를 따르는 룻입니다(3:6~18). 룻기 36그가 타작마당으로 내려가서 시어머니의 명령대로 다 하니라고 했습니다. 11절에는 “..내 딸아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네 말대로 네게 다 행하리라 네가 현숙한 여자인줄을 나의 성읍백성이 다 아느니라고 했습니다.

 

 오르바와 달리 시모를 따라왔던 룻은 시모의 뜻을 다 행했습니다. 즉 룻이 보아스와 기업무르기를 하도록 명하는 나오미의 뜻에 그대로 순종을 한 것입니다. 고엘이 되어줄 것을 겸손히 청하는 룻의 요구를 보아스는 이스라엘의 관례에 따라 그대로 받아 들였습니다. 그는 선순위에 있던 이스라엘 사람과 달리 인간적인 조건이나 이해타산을 따지지 않았습니다. 이는 룻에게도 그런 신앙과 인격이 내재되어 있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보아스는 룻을 현숙한 여자라고 했습니다. 잠언 기자는 현숙한 여인을 산업이 핍절치 아니하게 하며(31:11-19), 가난한 자에게 선을 행하고(31:20), 남편을 존귀케 만들며(31:23), 모든 언사에 지혜와 규모가 있고(31:26), 부지런하며 게으르지 아니하고(31:27),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말미암아 주변 사람들에게 칭찬을 듣는 자(31:30,31)라 했습니다. 룻도 성읍에서 현숙한 여자로 소문이 나있었습니다. 이런 룻이기에 시모의 명령도 그대로 따랐던 것입니다.

 

D.텅 빈 마당입니다(1:19~22). 룻기 121절에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내게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나를 징벌하셨고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셨거늘 너희가 어찌 나를 나오미라 부르느냐 하니라고 했습니다.

 

 나오미가 룻과 함께 고향 베들레헴으로 돌아왔습니다. 10년 만에 만나는 동네 사람들은 나오미를 보자 네가 나오미가 아니냐하며 맞아 주었습니다. 나오미는 이제 나를 나오미라고 부르지 말고 마라라고 부르라고 말합니다.


  ‘나오미라는 말은 유쾌함(희락)’이란 뜻이나 마라라는 말은 괴로움이란 뜻입니다. 나오미의 가족들은 다 죽고 남편의 이름도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서 사라지게 될 위기에 처하였습니다. 텅 빈 마당이 되어 돌아왔음을 고백한 것입니다.

 

D`. 풍성한 타작마당입니다(3:1~5).룻기 32절에 네가 함께 하던 하녀들을 둔 보아스는 우리의 친족이 아니냐 보라 그가 오늘 밤에 타작마당에서 보리를 까불리라고 했습니다.


  나오미는 풍족하게 나갔다가 텅 비어 돌아왔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베들레헴의 보아스의 집은 풍성한 타작마당이었습니다. 보리타작할 즈음인 팔레스틴 지방의 여름은 그 기후 상 낮에는 바람이 별로 없고 주로 오후 5시 이후의 밤에 내륙에서 지중해 쪽으로 바람이 불었습니다. 타작은 바로 이때 행해졌습니다. 타작을 하는 일꾼들은 저녁 내내 일을 하고 나서는 그 타작마당의 곡식 더미 곁에서 그대로 자는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팔레스틴의 기후 조건상 여름에는 겉옷만 덮고도 충분히 잠을 잘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오미는 룻에게 이 타작마당에 내려가서 보아스가 먹고 마시기를 다하기까지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보아스가 타작마당에 나타난 것은 압살롬이 양털을 깎은 후(삼하 13:23)연회를 베풀었듯이 추수를 마감하는 보리 까부르기를 필하는 밤에 일꾼들과 연회를 베풀었기 때문입니다.

 

E. 우연한 만남입니다(2:1~7). 룻기 23절에룻이 가서 베는 자를 따라 밭에서 이삭을 줍는데 우연히 엘리멜렉의 친족 보아스에게 속한 밭에 이르렀더라고 했습니다.


  룻은 시모를 섬기는 효행이 남달랐습니다. 룻은 이삭을 줍기 위해 밭으로 나갔습니다. 그런데 그 밭이 우연히 엘레멜렉의 친족 보아스의 밭이었습니다. 보아스는 이때 룻이 나오미와 함께 모압에서 왔다는 것을 듣게 됩니다. 우연한 만남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E`.다른 만남을 구하지 말라고 했습니다(2:17~23). 룻기 222절에 나오미가 며느리 룻에게 이르되 내 딸아 너는 그의 소녀들과 함께 나가고 다른 밭에서 사람을 만나지 아니하는 것이 좋으니라 하는지라고 했습니다.

 

 나오미는 룻이 보아스의 밭에서 이삭을 주운 것을 알고 다른 밭에 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나오미의 이 말 속에는 보아스가 엘리멜렉 가정의 '고엘'이 될 자격이 있다는 확신을 가진 것입니다. 보아스가 룻에게 이삭을 주우러 다른 밭에 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 말을 룻이 나오미에게 전해 줄 때 나오미는 보아스가 자기 친족의 고엘이 되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해석했던 것입니다. 따라서 룻에게 다른 사람의 밭으로 가서 보아스 외에 다른 사람을 만나게 되는 일을 삼가 하라고 충고했던 것입니다.

 

X. 룻 곧 이방의 밭의 축복입니다(2:8~16). 룻기 212절에 여호와께서 네가 행한 일에 보답하시기를 원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날개 아래에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하노라 하는지라고 했습니다.


  나오미와 함께 베들레헴에 도착한 룻은 보리밭에서 이삭을 주워 시모를 공경했습니다. 이러한 그녀의 행동은 베들레헴의 화제가 되었습니다.

룻은 시아버지 엘리멜렉의 친족 중에 유력한 보아스의 밭에서 이삭을 줍다가 보아스에게 발견되었습니다. 보아스는 룻에게 하나님의 날개 아래 보호 받으러 왔다고 했습니다. 모압에서 유다 베들레헴으로 온 것을 두고 한 말입니다. 불신우상숭배에서 하나님 경배 신앙으로 온 것 곧 룻의 개종을 두고 한 말입니다. 유력한 자란 이름의 뜻을 가진 보아스는 예수님의 모형이기도 합니다. 즉 룻은 예수 그리스도께로 나온 여자란 말입니다


  구약의 보리추수기는 신약적으로 오순절 성령강림의 시기입니다. 룻은 성령의 은총으로 떡집이란 뜻을 가진 베들레헴 곧 교회 안에 들어온 자가 된 것입니다. 룻은 신약시대에 이방인 가나안 여인이 그 믿음으로써 예수님의 마음을 감동시켰듯이(15:21-28) 역시 그 신앙으로 여호와께서 은총의 날개를 활짝 펴시도록 하기에 충분했던 것입니다.


  룻은 구원을 받을만한 조건이 하나도 없는 이방여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하나님의 은혜로 나오미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어머니가 신앙하는 여호와의 날개 아래로 피했습니다. 여호와의 날개는 오늘의 교회를 상징합니다. 교회로 피난 온 룻은 하나님의 구속에 수종을 든 여인이 되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이 되는 축복입니다. 그가 보아스와의 사이에서 낳은 오벳이 예수의 조상이 된 것입니다. 오벳이 이새를, 이새가 다윗을 낳은 것입니다(1:5,6). 이는 이방 불신세상 모압에서 주의 날개 아래로 피난 온 결과입니다. 이방여인으로서 큰 복을 받은 것입니다.

 

    나오미는 가계를 이을 사람이 없는 절망적인 상태에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양식을 주셨다 하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10년간 모압 땅에 살았던 나오미는 두 며느리를 데리고 귀향길을 결심했습니다. 당시 남편이 죽으면 남편의 동생과 결혼하여 자식을 취할 수 있었으나 나오미에게는 더 이상 아들이 없었고, 설사 후일 아들을 갖는다 해도 그들이 자라 결혼하게 될 가능성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오미는 두 며느리에게 각기 자기 집으로 돌아가라고 권했습니다.


  맏며느리 오르바는 곧 시모를 떠나 자기 집으로 돌아갔으나 룻은 끝까지 나오미를 떠나지 않고 유다 땅으로 돌아왔습니다. 룻은 자기 백성과 그 백성의 신을 버리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자 시모를 떠나려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