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양수필 ::

 - 추경호 목사와 나는 필리핀 성도를 향해 축복의 통로로 사용을 받은 것이다.

 

31일 목요일이 되었다. 이번에 필리핀에 간 우리 일행들의 주 사역은 화요일과 수요일 이틀간으로 집중되었다. 한국에서는 3.1절 행사가 한참인 듯했다. 그러나 이따금 휴대폰으로 고국의 소식을 보았을 정도로 필리핀 사역에 열중했다.

 

목요일에도 어린 학생들의 조회시간이 있었다. 이날의 설교는 김종민 목사가 감당하기로 했다. 기억은 생생하지 않지만 그가 설교하도록 청한 사람이 나인 듯싶다. 김 목사는 해외에서 선교사로서 사역을 한 경험이 있다.

 

그는 1989년부터 2년간 선교훈련을 받았다. 필리핀, 유고슬라비아, 그리스, 터키, 이태리 등에서였다. 그 후에 2000년부터 캄보디아와 이태리를 거쳐 남아공에서 선교사 사명을 감당했다. 그리고 인도에서도 선교사로서 사역했다. 그는 선교사명에 충만한 목사이다. 그리하여 귀국하여 부목사와 담임목사로 사역하면서 20여 차례나 중국을 위시하여 태국,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등에서 단기선교로 섬겼다.

 

김 목사의 이런 전력은 우리의 이번 선교여행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여러 면에서 그 은사가 돋보였던 것이다. 그만큼 나는 신경을 쓸 일이 줄어들어 버린 것이다. 이번에 김 목사의 은사를 눈으로 확인했다. 내가 가지지 못한 은사가 다양했다. 부러웠다.

 

무엇보다 김 목사는 어린 영혼들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좋은 동역 자를 한 사람 만났거나 얻었다는 마음이 들었다. 내가 가지지 못한 은사들이 그에게는 풍성하게 저장되어 있었다. 이를 어린 영혼들을 위해 선용하고 있었다.

 

김 목사는 돌아와서 바로 교회와 성도들을 움직였다. 필리핀의 어린영혼들을 위해 매월 10만원의 후원금을 보내기로 한 것이다. 이는 어린이들 중 학비를 내지 못하는 가난한 가정과 그 중 장래가 촉망한 어린이들의 학비를 위해 장학금으로 성별했다. joyful christian school의 한달 학비가 400페소라니 10만원이면 10명의 학비가 해결이 되는 것이다.

 

첫날 정 선교사가 김종민 목사에게 아침 조회시 설교를 부탁했었다. 그러나 김 목사는 결국 내가 감당하도록 했다. 즉석설교여서 나의 마음에 지금도 아쉬운 설교를 했다는 마음이다. 필리핀의 어린이란 것을 감안하는 시간이 필요했다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는다.

 

아침예배를 마치고는 우리는 여장을 준비하여 눈에 넣었고 가슴에 담았던 joyful christian school을 떠났다. 첫날 공항에서 우리를 픽업한 청년집사가 이날도 보였다. 이날은 우리의 동의하에 그의 아내도 동행했다. 조수석에 탑승한 것이다.

 

임신 중인 그 아내가 시내구경을 할 기회를 잡은 것이다. 마닐라의 SM몰에 도착하니 이미 점심시간이 되었다. 교통의 흐름이 용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식당에 들어갔다. 운전한 집사 부부도 합석을 했다. 이날 점심은 추경호 목사가 대접했다. 식사 한 끼에 약 350페소였다. 첫날 내가 대접한 것도 그 정도였다.

 

한 번의 점심 값이 운전자의 하루 수입보다 더 고가였던 것이다. 이를 생각하면 선교현장에서의 절제된 식사도 고려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면 정 선교사는 이 식사에 대단히 만족함을 보였다. 일에 지쳐있었던 그가 한번 먹고 싶었던 음식이란다.

 

누군가의 제안에 의해 1시간 30분 동안 자유시간을 주었다. 사실상 쇼핑시간을 준 것이다. 나와 추 목사는 몰 안을 돌다가 나의 제안으로 커피 점에 들어갔다. 피곤이 가중되어 있는데서인지 커피 한잔이 생각이 나서다. 추 목사도 그랬던 것 같다.

 

그때 운전한 부부도 보였다. 딱히 갈 곳이 없었던 것이다. 이들 부부는 고등학교 동창으로 만난 부부여서 나름대로 영어로 잘 통한다. 동행을 권했다. 마다하지 않았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그들이 얼마나 곤궁한 삶을 살고 있는지를 알았다.

 

그 아내가 임신 3개월임도 사실은 그 자리에서 알았다. 유리창 밖에 정진우 선교사가 지나갔다. 우리를 보고는 들어왔다. 양향모 목사와 김승현 목사도 따라 들어왔다. 정 선교사를 우리 자리에 합석을 시켜 잠시 대화를 하면서 추 목사와 내가 앞자리에 앉아 있는 부부에게 좀 후원을 해주고 싶다는 의사를 표했다. 정 선교사는 대단히 기쁜 표정을 지으면서 동의했다.

 

달러가 전해졌다. 그가 10일 이상 일을 해야 얻을 수 있는 재원이다. 나는 그 부부에게 이미 있는 두 자녀와 특별히 임신 중에 있는 아기를 위해 사용하라고 했다. 그 아내의 눈에는 눈물이 맺혔다. 운전한 집사도 숙연했다.

 

이들은 나와 추 목사에게 거듭하여 인사를 했다. 정 선교사에게는 우리와 같은 손님이 많지 않았다. 따라서 이 집사부부는 이런 경험이 처음이란다. 추경호 목사와 나는 필리핀 성도를 향해 축복의 통로로 사용을 받은 것이다. 이는 정 선교사의 사역에도 나름대로 힘을 실어주는 하나의 방법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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