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에 주님의 사랑을 교회와 담임목사를 통해 받았음을 기억한다고 다 이 장로와 같은 처신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날 이 장로에게 감사한 마음을 넘어 존경의 마음이 들었다.
11월 14일 화요일에 ‘헬로오드리’라는 레스토랑에서 대표인 이성만 장로를 만났다. 이 장로는 10월 31일에 가진 제1회 송상석 기념강좌의 전비용을 후원한 주인공이다. 이 강좌의 첫 번째 강사로 지목을 받고 준비하면서 제일문창교회의 허성동 목사를 통해 들은 이름이었다.
이 장로가 왜 이번 강좌에 헌신하는지 궁금했다. 특히 송상석 목사와의 관계가 그랬다. 또한 한상동과 송상석 목사 시대부터 오늘까지 전개되어 온 고신교단의 역사를 알고 이런 귀한 희생을 하는지 등을 알고 싶었다. 그런 중 감사하게도 강좌를 마친 후 이 장로가 나와 최정기 고신 언론사 사장 부부를 초대해주었다.
그가 운영하는 ‘헬로오드리’는 2천여 평의 대지에 세워진 판교의 대형 레스토랑이었다. 이곳으로 12시까지 오기를 청했지만 내가 도착한 시간은 오전 10시 15분 경이었다. 주차안내자의 인도를 받고 주차하고는 차 안에서 한 시간 이상을 다가올 주일에 전할 설교 원고를 숙지하는 등으로 시간을 사용했다.
약속 시간이 되어 가면서 내려서 주차관리 안내자와 잠시 대화했다. 그가 목사의 아들로 직장에서 은퇴하고 이곳에서 시간을 선용하고 있음을 알았다. 그를 통해 이성만 장로에 대해 들으면서 관심도는 더욱 높아졌다. 최 목사는 그의 아내인 강경 사모와 함께 도착했지만 나는 아내가 아직도 수술 후 회복의 단계여서 동행하지 못하였다.
주차장에서 살피니 10시 30분쯤 되니 거의 만차가 되었다. 불경기라는 말이 무색한 전경이었다. 식당에 들어서니 역시 빈자리가 보이지 않았다. 그 넓은 공간에 고객들로 가득했다. 사업 경영력의 탁월함은 현장에서 바로 숙지함이 가능했다.
이 장로와 넷이서 식탁에 앉아 대화의 꽃이 피어졌다. 최 목사와 이 장로는 나이도 비슷하고 경남지방에서 SFC 활동을 하였기에 대화의 소재가 막힘이 없었다. 나는 수도권 출신이어서 사람 중 일반 성도의 이름이 나오면 잘 몰라도 목사와 장로 등의 이름을 말하면 잘 알아들었다.
이를테면 권성문 목사나 송명규 목사 그리고 박윤섭 장로 등의 이름이다. 두 사람이 대화하는 것을 듣다가 기회가 되면 내가 잘 끼어들었다. 그 절정이 이번의 기념강좌에 후원하게 된 이유를 아는 것이었다. 이 장로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송상석 목사와 함께였다는 것부터 시작했다.
초중고생이었기에 설교에 대한 평은 하기 어려워도 송 목사가 인자한 분임을 기억했다. 교회의 뜰에 그늘을 드리운 나무가 있었고 송 목사는 종종 버드나무 그늘에 서서 노는 자신들을 보며 시간을 가졌단다. 어린이들에게도 항상 자애한 목소리와 표정을 지으며 대화했단다.
이 장로는 자신의 집이 가난으로 고통을 받았는데 교회에서 제공하는 구제 쌀을 받은 기억을 전했다. 이 교회의 장로이자 대학의 교수였던 분의 후원으로 대학 공부를 한 것도 떠올렸다. 자신의 아내가 된 신문주 권사와의 만남과 결혼 과정도 교회 생활과 무관하지 않았다.
이 장로의 머리에는 송 목사가 교회의 재산권과 더불어 소송을 했던 것이 남아 있었고 이로 인해 학생인 자신들이 겪었던 일화들도 생생하게 전하였다. 예컨대 송 목사가 속한 교회에 출석한다는 이유로 받은 당시의 설움 등을 설명했다. 역사학도인 나는 그 당시의 배경을 훤히 알고 들어 이 장로의 증언이 그야말로 보약이었다.
이 장로는 결혼에 관계한 사업을 시작으로 하여 오늘의 기업을 이루었다. 현재 250여 명의 직원에 월 8억 원 정도의 인건비 등을 지출하는 회사로 성장했단다. 슬하의 아들과 딸에게 현재 법이 정한 상속세를 전하면서 최소한만 물려주고 나머지는 자신이 살아 있는 동안 주님의 나라 확장에 다 사용할 것임을 알렸단다.
이런 과정은 집요하게 내가 묻는 터에 나온 답들이었다. 나중에 이 장로는 “신 목사님은 학자심이 분명합니다. 신변잡기에는 그저 듣기만 하시다가 역사에 관한 것은 집요하게 물으십니다.”라고 전하여 함께 웃었다. 이 장로는 송 목사와 교회를 생각하면서 제일문창교회에 장학금을 후원했단다. 자신의 과거를 생각하면서였다. 이것이 연유되어 제일문창교회의 사정을 깊이 알게 되었고 주차장을 매입하는 데도 후원했다. 이어 이번에는 기념강좌에도 사랑을 더한 것이다.
그는 SFC를 추억했다. 이에 속해 신앙의 성장을 맛보았고 특별히 동기와 하기의 수양회를 통해 주님의 은혜를 크게 맛보았다고 했다. 얼마 전에 누군가를 통해 전국의 SFC 간사들 100명에게 백만 원씩 사랑의 후원을 했다고 들었다. 이날 나는 대화 중에 이를 집요하게 물었고 이 장로는 자신을 그 이상 숨길 수가 없었다.
어린 시절에 주님의 사랑을 교회와 담임목사를 통해 받았음을 기억한다고 다 이 장로와 같은 처신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날 이 장로에게 감사한 마음을 넘어 존경의 마음이 들었다. 다음 만남을 기약하면서 일어서면서 이 장로는 식당 넘어 산속에 있는 건물을 가리키며 자신의 건물이라고 소개하며 그 속에 교회가 있음도 전했다.
제주도에도 게스트하우스가 있음을 전하며 선교사와 목회자 등을 위해서 등 다양하게 사용하고 있음도 전했다. 이해가 가기 전에 고신 언론사의 직원들이 모두 이 식당에 와서 교제할 것도 청하여 최정기 목사의 마음을 뿌듯하게 하기도 하였다. 나에게는 이상규 교수와 함께 들러 줄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 우리 교단에 이성만 장로가 있음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큰 감사가 넘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