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그동안 나의 서재와 서고를 지켜준 책을 생각하며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박병식, 이상규, 이복수, 최은수, 김장진 교수와 같은 스승들의 뒤를 이은 또 다른 스승이 책이었다.
1980년부터 신학 공부를 했다. 가난한 시절은 우리 가정이라고 비켜 가지 않았다. 중고등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공부를 이어갔다. 상식 위에 과학 그리고 그 위에 철학과 신학이 위치한다. 형이상학의 최고분야를 공부하면서 독서량은 대단히 중요한 요목이었다.
책을 한번 읽으면 보관이 필요했다. 장차 설교자로 살아야 했기에 더욱 그러했다. 하지만 책을 책장에 꽂아 보관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만큼 필요한 재원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가난했기에 그래서 중고서점을 잘 이용했다. 다른 하나가 어느 신학생이 복사해서 저가로 파는 것을 활용하기도 했지만, 이것이 범죄인 것을 깨닫고는 바로 벗어났다.
그럭저럭 필요한 책을 구매하면서 신학 공부를 마치고 목사로 안수받았다. 이때만 해도 최소한의 책을 가진 채 교회를 개척했다. 그러다가 이원조 목사를 만나면서 중고서점을 자주 다니기 시작했고 감사하게도 목회를 포기했거나 등의 이유로 내다 판 책을 내 손에 놓을 수가 있었다.
2000년에는 고신대 대학원에 입학하여 전문적인 신학을 시작했다. 역사신학이었다. 이때 이상규 교수가 고신대학 도서관장이었다. 이 당시 대학의 도서관에 보관이 어려운 책들을 종종 학생들에게 저가로 공급하는 저가 판매행사가 있었다.
이 교수는 인천에서 공부하러 부산까지 오는 나를 생각하여 내게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책들을 사 두었다가 내가 가면 실어주었다. 당시 수업 시간을 맞출 수가 없어 추경호 목사와 함께 내 차를 타고 공부하러 다녔었기에 차에 책을 가득 싣고 돌아왔었다.
이 교수의 배려로 고신대학과 기타 여러 신학교에서 강의하면서 필요한 책들은 늘어만 갔다. 그리하여 고려신학교 출신 중에는 책을 가장 많이 소유했다는 소리를 듣곤 했었다. 여러 사람으로부터 학자형 목사라는 소리도 들었다. 아마 목회하면서 대학에서 강의도 했기에 그런 평을 했을 것이다.
강의하면서 출판사로부터 책을 기증도 많이 받았다. 이를 수많은 동역자와 나누면서 지냈던 것이 엊그제와 같다. 선교후원금 마련을 위한 바자 회도 자주 했었다. 책을 팔아서 천만 원 이상씩 두어 차례 선교헌금을 마련했으니 내가 소유한 책의 분량이 가늠된다.
책을 3층에 있는 교회로 나르기 위해 지게를 구해 수도 없이 오르내린 일이 엊그제다. 지인 중 나의 서재를 방문하면 감탄을 할 정도였다. 스승인 이상규 교수도 방문하여 놀람을 표했고 나의 서재에서 필요한 책을 빌려서 가거나 내가 선물로 드린 일도 적지 않다. 아무래도 전문학자에게 필요한 책이라고 여기면 스승에게 양보했고 상응하여 이 교수는 다른 여러 책을 돌려주어 나의 마음을 채워주었다.
스승인 이 교수는 고신대학을 은퇴하면서 학교 근처의 자택에 책을 다 소장했다. 한번 방문해보니 내외분이 잠잘 공간을 빼면 모두 책으로 도배가 되어있었다. 분야별로 정리가 되어있었지만, 역사신학의 책이 대다수였다. 세계적인 학자라고 함은 그의 소재가 증명하는 부분이 있다.
12월 3일에 은퇴한다. 은퇴 준비 중 하나가 책을 정리하는 것이었다. 아들이 목사로 안수받았지만 내가 소장한 책에 거의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우선 활자부터가 다르다는 것이다. 내가 보아도 아들 목사는 양서를 많이 소장했다. 여전히 책을 사는 데는 아끼지 않음도 파악했다.
11월에 들어서면서 본격적으로 책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전에도 생각이 날 때마다 정리하여 이미 삼천kg 정도는 정리한 상태였다. 그러다가 지난 10월 31일 송상석 기념강좌가 마쳐진 후 본격적으로 다시 정리에 들어갔다.
내가 소장한 책이기에 내가 아니면 정리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11월 11일에 천삼백kg 13일에 천kg 그리고 16일 목요일에 다시 사백kg 정도를 정리했다. 1kg에 파지값이 70원이나 80원 정도라고 하니 가져간 이도 크게 소득은 되지 않으나 그래도 용돈은 되는 수준이었다.
아침을 먹고 교회로 가서 정리하다 보면 당뇨도 정상 수치가 된다. 하지만 정리하면서 눈물도 났다. 시원섭섭하다 함이 내 마음을 표현하는 적합한 용어일 것이다. 35년간 애지중지했던 책들이다. 이제 내게 필요한 책만 남기고 정리하라는 아내의 권고를 그대로 받아 마무리 정리단계에 들었다.
어떤 책은 한 줄을 보기 위해 보관된 책도 있었다. 사실 읽지 못하고 버린 책도 있어서 그 책에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도 책을 손에 넣으면 최소한 주제는 파악하고 있었기에 감사했다. 책을 정리하면서 스승인 이상규 교수의 저술들과 내가 집필한 책들을 모아 따로 정리했다.
하나님께 감사는 언제가 두말할 여지가 없다. 오늘은 그동안 나의 서재와 서고를 지켜준 책을 생각하며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정리에 임했다. 박병식, 이상규, 이복수, 최은수, 김장진 교수와 같은 스승들의 뒤를 이은 또 다른 스승이 책이었다. 책들은 그들을 정리할 수밖에 없는 나의 심정을 이해해 줄 것이다. 오늘은 무엇인지 착잡하다. 그렇게 35년을 정리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