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 관계하여 알게 된 목사가 자신의 결혼을 축하한다면 그만큼 대학과 가까워졌다는 마음이 들 것이고 또 목사가 자신을 위해 기도한다는 위로도 생길 것이기 때문이다.
목사 그것도 담임목사로 산다는 것이 때론 힘든 부분도 있다. 11월이 시작되면서 15일까지 내가 챙긴 경조사가 6건이나 된다. 노회의 경조 건은 교회의 도움을 받아 처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개인적인 부분은 내가 감당해야만 한다.
그중에 특별한 경조가 있었다. 얼마 전 부산외대에 채플 설교를 마치고 대학교회 쪽으로 내려오는데 두 여인이 전도하고 있었다. 부산 대청교회의 집사와 청년이었다. 이들의 전도는 천사의 모습으로 내게 다가왔다. 그 후 두 사람과 소식을 나누며 교제하고 있다.
그러다가 이번 10월 23일부터 4일간 외대에서 설교와 특강을 감당했었다. 이때 두 사람이 하는 전도 장면을 다시 대하였다. 이들이 가진 구령 열정의 변함없음을 대하면서 마음에 감격이 솟아났다. 대학 안에 신천지와 같은 이단들도 전도에 열심을 낸단다.
그리하여 기독교 신앙을 중시하는 대학에서 전도를 제재하기도 했다. 정확히 말하면 이단 전도를 금하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빈대를 잡다가 초가삼간을 태운 격이 되었다. 이를 집사에게 들으면서 이복수 교수와 바로 상의했고 대학에서는 전도 구역을 설정해 줌으로 이들이 행복한 전도를 하고 있다.
이번에는 전도하는 최영숙 집사가 이 교수와 나에게 점심을 대접해준다고 하여 교제의 시간을 가졌다. 식당에 우연히 늦게 온 장순흥 총장이 사연을 알고 점심을 대접해주어 최 집사는 전도하는 대학의 총장을 직접 대하는 기쁨을 간증했다.
이때 그가 출석하는 대학 근처의 대청교회도 방문하여 카페에서 시간을 가졌다. 이날 최 집사는 전도 파트너인 민지 청년에 대해 정보를 주었다. 고신대학 음대를 졸업하고 독일에서 유학까지 마친 청년이었다. 이 교수의 딸도 독일에서 음악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기에 대화가 잘 되었다. 이런 딸이 현재 교회에서 반주로 헌신하다가 교회의 청년과 결혼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최 집사는 지나는 말로 결혼 이야기를 했다. 이유는 그가 결혼해도 교회를 떠나는 것이 아니어서 대학에서 전도하는 일도 지속한다는 것이 요지였다. 들으면서 참으로 감사했다. 예배반주자들이 통상 믿음이 없는 경우가 보인다.
반주는 하지만 설교를 잘 듣지 않고 또 반주 외에는 다른 봉사는 하지 않는 특징이 나타나는 것이다. 물론 예외는 있다. 그런 예외가 바로 민지 청년이다. 이런 딸의 결혼을 축하함은 나의 할 일이라 여겼다. 대학에 관계하여 알게 된 목사가 자신의 결혼을 축하한다면 그만큼 대학과 가까워졌다는 마음이 들 것이고 또 목사가 자신을 위해 기도한다는 위로도 생길 것이기 때문이다.
전기한대로 경조 건이 많아 마음만 담은 소액의 축하일지라도 민지 청년은 큰 감사를 담아서 돌렸다.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이들과 함께 대학에서 전도하는 내가 되기를 바라는 모습도 그려보았다. 최 집사도 귀하지만 민지 청년과 같은 젊은이가 전도에 열심을 내는 모습은 또 다른 측면에서 멋진 것이다.
민지 청년을 축하한 결혼 당일인 11월 11일 토요일 늦은 밤에 황영미 집사를 통해 그의 백세 된 모친의 귀천 소식을 받았다. 황 집사가 망설이다가 보낸 것 같았다. 즉시 기도하고 지난날을 추억해보았다. 주일을 보내면 월요일 일찍 발인이었다.
더욱이 속초여서 오후 예배를 마치고 간다고 해도 어려움이 있었기에 가지 못하고 조의를 표했다. 이를 황 집사도 잘 이해해주었다. 나를 통하여 선교를 잘 감당해준 집사였다. 내가 필리핀에 머물며 목회할 때도 사랑의 봉사가 풍성했었다. 특별히 물질헌신도 컸다.
그러나 전기한 이유와 아내의 긴 질병으로 풍성한 사랑을 돌리지 못하였다. 황 집사는 외동딸이었다. 장례를 치르면서 나름 힘이 들었을 것이다. 그래도 황 집사에게 남매가 있다. 이제 가정을 이룰 때가 다 되어간다. 받은 사랑을 되돌려야 하는데 은퇴가 가깝다.
황 집사는 지금까지 어린이전도협회에서 최선을 다한 전도를 하고 있다. 민지 청년이나 황 집사의 공통점은 구령의 열정이다. 이들을 대하면서 목사가 은퇴한다고 목사직이 끝나지 않음을 생각해보고 있다. 이들이 보인 구령의 열정을 생각하면서 목사 비록 은퇴 목사로 살아갈지라도 잘 감당할 것을 다짐하여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