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퇴원 후 스승인 이상규 교수가 아내에게 직접 사랑의 위로를 전했다. 내가 감당하기 어려운 수술비까지 보조하면서다. 그러나 사랑의 위로를 담은 문자는 가슴에 담고 수술비는 돌려드리자고 아내가 간청했다.
5월 24일 수요일에 아내는 8차 항암치료를 위해 중앙대학 광명병원에 입원했다. 아내를 내려놓고 교회로 향하는 데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한 마디로 마음이 무거웠다. 그간에 아내로서 특별히 목사의 아내로서 사명을 감당해 준 일을 생각하니 더욱 그러하다.
사람들이 아들 목사를 잘 길렀다고 칭송한다. 이 역시 주님의 은혜임은 당연하거니와 이면에 아내가 잘 사용을 받았다. 이런 점에서도 아내에게 감사할 조건이 많은 나다. 통상 수요일에 입원하면 토요일에 퇴원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상황이 좀 달랐다.
8차를 마쳤으니 이제 항암치료는 마지막이다. 6월 13일 화요일에 수술대에 올라야 한다. 따라서 각종 검사가 다른 때와는 달리 많다. 문제는 5월 27일 토요일이 불교 행사가 있는 사월 초파일이어서 공휴일이었다. 검사 인력들이 쉬는 날이다.
휴일은 29일 월요일까지였다. 대체공휴일 제도로 인해서다. 그러니 아내는 그 이후에나 검사를 다 마치고 퇴원해야 한다. 아내는 주일에도 병원에 있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유익도 있었다. 토요일에 퇴원하면 백혈구 수치를 올리기 위해 맞은 주사로 인해 몸살을 앓는다. 이번에는 병원에서 주사를 맞고 자연스럽게 쉬고 나오게 되어 30일 화요일에 퇴원할 때 몸살이 없었다.
30일 오전 10시가 좀 지나 병원에 도착하여 아내를 기다렸다. 아내는 당일 검사가 너무나 밀려 두어 가지 검사를 다음 주 월요일에 받기로 하고 퇴원했다. 이제 수술을 위한 전 단계로 여러 검사가 진행되는 것이다. 아내는 퇴원하여 차 안에서 약 한 주간 입원해 있으면서 수면이 부족했고 식사도 제대로 먹지 못하여 배도 고프다고 호소했다.
항암을 하면서 코를 진하게 곯아 주변 환자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 잠을 설친 것이다. 병원의 음식이 건강만 추구하다 보니 입맛에 맞지도 않은 점이 아내가 배고프게 한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것은 큰 문제가 아니었다. 아내는 차 안에서 그간의 병상에서 듣고 본 이야기들을 종합하여 몇 가지를 전하였다.
항암치료를 하다가 도중에 너무 힘이 든다며 포기한 이가 있단다. 어떤 환자는 8차 항암을 마치고 수술도 끝냈는데 두 달 만에 재발하여 입원했단다. 항암을 하면서 구토증세 등으로 밤새 괴로워하는 환자도 있었단다. 이에 비하면 자신은 너무나 쉽게 항암 8차를 마쳤다고 했다. 이때 가족과 성도들의 기도를 주님께서 응답해주셨다고 전했다.
그러나 백혈구 수치 주사를 맞으면 한 사나흘을 몸살을 진하게 앓아 크게 힘이 들었다고 했다. 이를테면 항암은 쉽게 했는데 수치 조정을 위한 주사가 힘이 들었다는 것이다. 집에서 끙끙 앓고 있음을 목격한 나로서는 모두 이해하고 들었다.
아내는 병원에서 자신이 가진 암에 대해 전문가가 되어 돌아왔다. 이에 대해서 나도 전문가가 되어 주기를 은근히 바라고 있었다. 그래야 자신의 남은 치료에 내가 잘 임할 수 있다는 생각을 소유한 것이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는 지혜로운 아내를 믿고 있다.
아내가 잘 알고 적응하며 감당할 때 곁에서 여러 부분에 도움을 주는 것은 나의 할 일이다. 그중 하나가 아내의 치료와 이를 위한 식단을 공급하는 일이다. 아내는 주님의 뜻에 모든 것을 맡긴다고 생각하면서도 아직은 자신이 더 할 일이 있다고 생각했다. 이는 당연하다.
아직 아내는 젊고 주님의 나라를 위해 할 일이 많기 때문이다. 이를 스스로 잘 알고 있다. 요즈음 아내가 먹고 싶은 것이 많다. 과일을 평소 좋아했지만, 나의 지갑을 잘 열어야만 하는 과일도 찾는다. 자신의 몸을 위해 안동찜닭이 좋단다. 그리고 먹고 싶다고 했다.
암 발병 전에도 한번 먹자고 했지만 단 한 번도 사주지 못하였다. 먹을 것을 다 먹고 입을 것을 다 입으면 목사로서 특히 선교와 구제하는 일에 몰두하지 못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런 논리를 아내는 받아주었다. 어느덧 39년이다. 그러면서 목회와 강의하면서 얻은 수입으로 부단히 선교와 구제를 했다. 이것은 주님께서 우리 부부에게 주신 힘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러나 요즈음 그 순위를 바꾸고 있다. 이제 아내에게 먼저 선교와 구제에 힘을 쏟고자 하는 것이다. 아내는 자신이 시한부 인생에 들었다고 진단했다. 가슴이 아팠다. 사실 나도 시한부 인생이고 사람은 누구나 예외가 없다. 그렇지만 암 판정을 받고 대응 과정에 있으니 아내는 맘이 약해진 것이다.
이럴 때 위로자가 그나마라도 될 수 있는 사람이 남편인 나라고 생각하니 아내를 위해서 비록 늦었다고 하더라도 사랑을 마음껏 쏟고자 한다. 후에 후회가 없도록 이다. 그러면서도 주님께서 아내보다 나를 먼저 불러주시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22년 11월까지는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 아내에게 미쳤다. 여전히 주님의 뜻을 찾으면서도 주어진 여건과 환경에서 믿음으로 대응하고자 한다. 이는 아내에게 더욱 더한 신앙의 견고함이 있다. 그래서 힘을 더 내게 된다.
퇴원 후 스승인 이상규 교수가 나와 아내에게 직접 사랑의 위로를 전했다. 내가 스승에게 받기에는 감당하기 어려운 금액의 수술비까지 보조하면서다. 그러나 사랑의 위로를 담은 문자는 가슴에 감사함으로 담고 수술비는 돌려드리자고 아내와 상의했다. 아내가 먼저 간청한 부분이다.
이 교수는 아내에게 “사모님. 그간도 수고 많으셨어요. 8차례나 항암치료 받으시고 잘 이겨내셨으니 사모님의 의지가 대단합니다. 오늘 조선일보 보니 요즘은 항암치료 후 수술한다고 하는군요. 이제 큰일은 다 통과했습니다, 수술이라는 마지막 터널을 나오시면 밝은 세계가 있으니 힘내시고요. 우리도 기도하겠습니다. 이제 조금만 수고하시면 더욱 건강하실 줄 믿습니다. 후에 서울 가서 뵙겠습니다. 이상규”라고 위로의 소식을 주었다.
아내는 내가 가장 어려움을 당하였을 때 스승인 이상규 교수가 건졌다며 종종 감사의 뜻을 내게 전한다. 한번 스승은 영원한 스승이란 말도 아내가 내게 전하며 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