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룡, 박윤선의 제자인 박병식 목사가 나를 제자로 받아준 것만으로도 나의 목회와 강의가 행복했다. 아내는 박 목사의 사랑이 풍성하게 담긴 소식에 큰 힘을 얻었음을 바로 보여주었다.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안 현숙 사모님께 자비와 사랑을 더 하시기를 빕니다. 저는 목회하면서 사모님과 같은 질병으로 수술을 받고 항암 치료를 받는 이들의 모습을 종종 보았습니다. 1차 2차 3차 치료를 받는 동안 여성에게 소중한 머리가 서서히 탈모가 되어 가는 과정을 보았습니다. 이를 감추기 위해 머리를 수건으로 가리고 창백한 모습으로 주님께 간절히 손을 모으는 모습들을 지금도 떠올리고 있습니다.
그 힘든 항암 치료를 8차까지 마친 사모님의 모습이 어떨까를 상상하고 있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신 재철 목사님께서 항암 치료를 받고 계시는 안 현숙 사모님의 근황을 종종 알려 주시곤 하셨습니다. 사모님께서 그 힘든 항암 치료에도 불구하고 전혀 동요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평상의 모습을 유지하시며 소망 중에 즐거워하신다고 알려 주셨습니다. 그 말씀을 들을 때마다 주님의 손이 사모님을 인도하시며 주님께서 의로운 오른 손으로 사모님을 붙드시고 계심을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치료를 견디지 못하고 병마가 힘을 잃어 쇠잔해질 때 수술로 이를 제거하면 사모님은 완전히 회복하실 줄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안 현숙 사모님이 퇴원하셨고 오는 6월 13일에는 드디어 수술을 받으시게 된다고 신 목사님이 알려 주셨습니다. 그런데 삼중 음성 암이어서 재발율이 95%라고 알려 주셨습니다. 그 말씀은 제게 큰 충격이었습니다. 수술 후 사모님의 밝고 건강한 모습을 예견했던 저의 마음에는 갑자기 반대의 상황에 매여 설명하기 어렵게 만감이 교차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불의치 아니 하사 그의 종이 한 사역과 그 종이 사랑으로 성도를 섬기는 것과 지금도 섬기는 것을 잊지 아니하신다는 말씀을 저는 늘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의 종의 사역과 사랑으로 그 종이 성도를 섬겼던 것들을 그리고 지금도 섬기고 있는 것을 잊지 아니하심이 하나님의 의로우심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가장 낮은 곳에서 주님의 몸 된 초원교회를 신 재철 목사님과 함께 안 현숙 사모님이 개척하셨습니다. 소수의 남은 자들의 모임, 굶주림의 고난, 무시당함과 버림받음의 아픔, 사력을 다해 충성했으나 나타난 초라한 열매에도 결코 굴하지 않는 목회의 열정이 신 재철 목사님과 안 현숙 사모님께 있었습니다. 개척의 고난을 더 큰 고난으로 이어가는 교권의 폭력이 있었습니다. 사실을 거짓으로 덮으려 하고, 모든 증거를 폭력으로 없애려 하고, 정의를 교권과 다수로 꺾으려 함에 맞서는 진리 투쟁에서 힘들어 하는 신 재철 목사님에게 힘을 실어주는 일을 안 현숙 사모님이 하셨습니다.
주의 종들을 기억하시고 불의치 아니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종들에게 귀중한 열매들을 보게 하셨습니다. 초원교회를 놀랍게 성장시켜 주셨습니다. 부산 외대에서의 신 재철 목사님의 사역은 참으로 놀라운 열매들을 거두게 하였습니다. 노회와 총회에서 신 재철 목사님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훌륭한 리더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역 사회에서의 선한 영향력을 수없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안 현숙 사모님의 기도와 사명을 다한 내조에 신 목사님은 한결같이 “제가 참으로 더한 고마움과 미안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평생의 목회가 아름답게 맺어지는 마지막 열매들을 기쁨으로 바라보시며 안 현숙 사모님은 주님을 찬양하며 감사하시게 될 것입니다. 안 현숙 사모님의 독자 신 상훈 목사님은 주님이 쓰시는 이 시대의 복음의 증인입니다. 고신대학교 신학부를 뛰어난 실력으로 졸업하였습니다. 훌륭한 신학자의 자질이 있음을 인정한 여러 교수님들이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외국의 신학교에 가서 석사 박사 학위를 취득할 것을 권했으나 신 목사는 오직 목회자의 삶만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이름 있는 교회들이 청빙하려고 하였으나 신 목사는 이름 없는 작은 교회에서 사역하고 있습니다. 안 현숙 사모님은 독자 신 목사님이 여호와 하나님의 신실한 복음의 증인으로 살아가는 모습들을 감격으로 바라보며 감사하고 찬양하시게 될 것입니다.
이런 사모님에게 의사는 재발할 가능성이 95%라고 말했습니다. 사모님은 평생 영생의 소망을 따라 하나님의 왕국의 상속자로 살아오셨습니다.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고 한 바울 사도의 고백이 안 현숙 사모님의 평생의 고백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의사의 95%라는 말에 사모님은 크게 동요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말에 신 재철 목사님, 신 상훈 목사, 자부와 손자가 받은 충격이 얼마나 컸겠는가를 짐작하고 있습니다. 신 목사님과 사모님의 형제자매들, 일가친지들의 충격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초원교회 성도들이 슬퍼하고 울며 기도하고 있으리라고 생각됩니다. 추 경호 목사님 내외분, 양 향모 목사님 내외분, 김 종선 목사님 내외분 등 수많은 동지 목사님들과 장로님들 성도들이 울며 기도하고 있을 것입니다. 한없이 부족한 저에게와 제 아내에게도 이를 안 이후 지금까지 충격의 마음 그대로입니다.
사모님, 저는 지금도 2006년 8월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송파제일교회의 담임 목사로서는 마지막 설교를 한 주일이었습니다. 그 날 11시에 시작하는 2부 예배 시간에 성도들이 가득 모였습니다. 960석 좌석이 가득 찼습니다. 교육관에서 1인용 의자 50개를 이층 본당으로 옮겨와 여기 저기 놓았습니다. 그러나 제가 설교를 하는 시간에는 자리가 없어 뒤에 서있는 성도들이 많았습니다. 미안한 마음, 염려하는 마음과 함께 제 마음에는 감격이 있었습니다.
다음 날 월요일이었습니다. 러시아 목회자들 훈련 장소인 포천 기도원으로 아침 일찍 차를 몰고 가고 있었습니다. 그 때 바로 고속도로 위에서 제가 혼자 운전하고 가던 중 쓰러졌습니다. 저는 다른 차에 추돌되어 그 자리에서 죽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살려주셨습니다. 의식을 잃은 저는 강남 삼성 의료원으로 옮겨졌습니다. 뇌 대동맥 파열로 진단이 나왔습니다. 연락을 받고 온 가족들과 교회 장로님들이 속히 수술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담당 의사는 이 분야 최고 전문 의사였습니다. 그는 수술해도 살 수 없다고 하면서 수술을 지연시켰습니다.
죽어도 문제 삼지 않겠다고 한 가족들과 장로님들의 서약을 받고 수술에 들어갔습니다. 7시간이 넘게 수술을 했습니다. 수술 후 담당 의사는 사망할 확률이 높다, 살아도 몇 년 가지 못해 사망한다, 사망하지 않아도 손발이 마비가 되고 언어 장애를 갖게 될 것이다 고 말했습니다. 저는 중환자실에 들어가 상당한 시간이 지난 후 깨어났습니다. 의식을 잃고, 수술을 받고, 오랜 시간이 지나 깨어날 때까지 아무 것도 기억나는 게 없었습니다. 누구를 만났다든지, 무슨 말을 들었다든지 등 아무 것도 기억나는 게 없었습니다.
그러나 깨어났을 때 제 마음은 한없이 평온하고 기분이 상쾌했습니다. 너무나도 좋은 곳에 있다가 깨어난 듯했습니다. 그래서 깨어났을 때, “왜 내가 다시 왔지?”, 라고 말했습니다. 지금도 그 마음은 변함이 없습니다. 의사가 거의 확실하게 중증 장애인이 될 것이다 라고 말했지만 사모님이 보고 아시는 대로 제 몸에는 어디에도 장애가 없습니다. 저와 같은 증상으로 수술을 받은 이들이 최고 살아야 10년이고 그렇지 않으면 3년, 혹은 5년 후에는 다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그러나 저는 이미 17년이 지났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건강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분명 의사가 제게 95% 이상이라고 한 말이 해당되지 않고 있습니다.
안 현숙 사모님, 지난날 주님을 위해 죽도록 총성하신 헌신을 의로우신 주님은 기억하고 계십니다. 한 사람의 경우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적용되지는 않습니다. 사모님이나 저나 오늘 주님 앞에 가도 오직 감사, 오직 찬송, 오직 감격일 뿐입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의 고백처럼, “내가 그 둘(세상에 남아 더 사는 것과 죽어 주님 앞에 가는 것) 사이에 끼었으니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 그렇게 하고 싶으나 내가 육신으로 있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신 목사님을 위하여, 신 상훈 목사님을 위하여, 초원교회를 위하여..........)더 유익하리라”, 가 사모님의 고백인 줄 믿습니다. 부족하고 부족하지만 안 현숙 사모님을 위하여 저와 아내가 기도하겠습니다.
2023년 6월 3일 박 병식 드립니다.“
박 목사의 위로를 받은 아내는 힘을 낼 수가 있었다. 모처럼 나를 위해 반찬을 사러 갔다. 하루 뒤인 주일에는 오전과 오후에 예배를 드렸다. 아내를 본 일부 권사들은 아내를 안고 함께 우는 모습도 보였다. 이는 항암 치료 기간에 보인 모습을 생각하면 기적과 같은 일이었다. 그만큼 박 목사의 사랑이 담긴 제자 사랑은 이를 통로로 주님께서 놀라운 역사를 하신 것이다. 아내의 수술을 앞두고 사랑의 비용까지 후원한 박 목사를 대하면서 나에게 이런 스승을 통해 바른 길로 인도하고자 하시는 주님의 뜻을 깊이 새긴다. 불의 한 스승을 통해 많은 경험을 한 바가 있기에 이는 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