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모께서 아내가 순산했을 때 사위인 나를 보자마자 “여보게 딸이네, 어쩌나 목사감을 기다렸는데”라고 전했다. 전하면서 나의 표정을 살피니 대단히 실망하는 모습이었단다.
아들 신상훈 강도사가 4월 10일에 목사안수를 받는다. 1986년 9월 23일에 아내는 출산을 위해 산부인과에 입원해있었다. 당시 장인이 손자를 보러 왔다가 인근 병원에서 건강검진을 했다. 안타깝게도 간암 말기 판정을 받고 한 달여 만에 주님의 품에 안겼다. 이 기간은 주님을 전하는 시간이었고 장인이 주님을 영접한 기간이었다.
장모께서 아내가 순산했을 때 사위인 나를 보자마자 “여보게 딸이네, 어쩌나 목사감을 기다렸는데”라고 전했다. 당시는 해산할 때 남편이 곁을 지키는 시대가 아니었다. 전하면서 나의 표정을 살피니 대단히 실망하는 모습이었단다.
아내와 나는 아들을 낳으면 장차 목사가 되면 좋겠다고 했었다. 기도를 열심히 한 것까지는 아니라도 그런 마음의 소원이 있었다. 그만큼 당시 내가 걷고 있는 목사의 길과 아내가 가는 목사 아내의 길이 행복하고 감사했기에다. 이런 길을 아들이 대를 잇는다면 더한 감사가 된다고 여겼다. 이를 알고 장모께서 딸이라고 농담을 하고는 나를 살핀 것이다.
상훈이는 목사의 가정에서 자랐다. 그러나 내가 교권에 동조하지 않는 것 사실 그에게 회개를 촉구했던 일로 그 뒤에 당한 고통은 기록 자체가 어렵다. 당해본 사람만이 아는 일이다. 그래도 주님의 나라를 생각하면서 인내했다. 이를 지켜보는 아내와 특히 어린아들은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상훈이는 초등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장차의 꿈이 목사였다. 그렇게 우리 내외의 소원과 자신의 꿈이 일치했다. 하지만 내가 불의한 지도자와 그 하수 목사들을 통해 고통당하는 모습을 대하면서 목사의 꿈을 접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잠시 다른 직업을 가졌던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들을 주님 자신의 종으로 불러주셨고 특별한 기회를 만들어 고려신학대학원에 입학하도록 했다. 내가 30세에 목사 안수를 받은 것을 생각하면 아들은 뒤늦게 신학에 입문한 것이다. 그래도 3년 내내 최선을 다해 공부했고 장학혜택을 받으며 마쳤으니 감사가 넘친다.
큰 교회에서 배워서 그런 교회의 담임목사가 된다는 비전은 아들에게 아예 없었다. 그리하여 택한 교회가 개혁주의 신앙과 신학의 보루인 광교 장로교회였다. 아들의 멘토 교수가 적지 않을지라도 아들은 그중 이성호 교수를 택한 것이다.
그리하여 정중현 목사를 담임목사로 만났고 심성현 목사를 동역자로 만났다. 이들 두 선배를 통하여 실제적인 많은 것을 체득했다. 이런 점에서 이성호 교수와 두 동역자에게 나 역시 학부 형 목사의 자격으로 감사하고 있다.
2월 27일 월요일에 목사고시를 친다고 할 때 다소 긴장했었다. 과거 악몽 때문이다. 목사들이 사감이 있으면 목사고시에 합격해도 훈련이란 명분으로 떨어뜨린 것이다. 감사하게도 고신교단에서는 그런 점이 발견되지 않아 다행이다. 나의 아들이란 점에서 아들은 불필요한 훈련을 받을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이제 4월 10일에 목사로 안수를 받는다. 김장진 목사는 그 아들이 안수받을 때 안수 위원으로 청함을 받았고 그것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이를 들으면서 나도 긍정했다. 아들이 속한 노회에서 사역하는 친구인 조원근 목사를 통해 이를 알렸더니 안수 위원에 들게 했다.
이를 아들이 알고 여러 이유로 반대 의사를 가지고 나의 의중을 살폈다. 그중 중요한 것이 그 동기와 같이 안수받는 데 그 친구의 아버지는 목사가 아니어서 동기를 생각하며 내가 학부 형의 자리를 지키기 원한 것이다. 그래서 다시 조 목사에게 전하여 안수 위원에서 빠졌다.
여전히 동료를 배려하는 아들을 대하면서 감사했다. 1990년에 내가 안수받을 때 모두 10명이었다. 신학교 입학으로 내가 가장 선배였다. 그런데 안수 준비를 나에게 위임하여서 내 이름을 가장 뒤에 넣었었다. 솔직히 지금은 후회된다. 역사가 지나면서 선후배 관계가 당시의 문서로 흐려지기 때문이다.
이런 점은 2001년에 서경노회가 생길 때도 같았다. 합동추진위원회의 고려 측 대표 기명에 내가 주도하면서 또 후배인 조원근 목사와 이길봉 목사 그리고 추경호 목사의 이름을 내 앞에 넣은 것이다. 이는 앞의 사안보다 선후배 관계를 더욱 흐리게 한 문서가 되었다.
그래도 남을 배려하는 마음은 목사에게 있어 대단히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아들이 기대된다. 나는 연단이 컸다. 아들은 교권과 대항할 필요가 없는 환경이다. 고려가 아닌 고신교단이다. 주님께 받은 사명을 잘 감당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것이 목사로 출발할 아들과 며느리 그리고 손자에게 거는 기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