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미래를 위해 가장 많이 기도하는 자리를 빼앗기고 싶지 않다. 그래서 이 부분에 대해 집중 기도와 더불어 숙고한다.
나름대로 분주히 산다. 그런 중에 아들이 “아빠 오늘이 성희 생일이어요.”라고 전했다. 3월 10일 금요일에 아들 내외와 함께 점심을 먹으러 가면서 들은 말이다. 아직은 기계치 수준이다. 종종 누구의 생일이라고 뜨는 것을 대한다. 하지만 나의 핸드폰에 추성희의 생일은 알려지지 않았다.
성희는 김길순 권사의 딸로 초원 산이다. 나에게 유아세례를 받고 입교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지금은 제주도에 있는 호텔에서 근무하고 있다. 고등학생 때까지는 예배의 반주 봉사까지 했기에 아쉬운 대목이다. 지금은 영상으로 예배를 드리고 주일에는 가까운 교회에 가서 예배도 드리고 있다.
성희는 조만간 교회로 돌아온다고 생각을 하고 있다. 다만 자신이 직장에 다님에 있어 인천보다는 제주도가 정당한 대우를 한다고 여겨 제주도에서 나그네로 사는 것이다. 그리하여 여전히 십일조도 김 권사를 통해 우리 교회에 드리고 있다.
하지만 성희보다 제주도에 일찍 내려가서 사는 그 오빠 성훈 집사 부부는 우리 교회로 십일조를 드리지 않는다. 평소 내가 출석하는 교회에 십일조를 드리라고 가르쳤기에 마음이 상하지는 않았지만, 반드시 돌아와 교회의 미래를 책임져야 할 일꾼이다.
상훈이와 최근 통화 중에 내년 4월에는 2년으로 제주도 삶을 마치고 교회로 복귀하겠다고 하여 감사했다. 성훈이는 유아세례와 입교 그리고 결혼 주례까지 내가 감당한 청년 집사이다. 성희에게 생일선물을 하나 보내라며 아들에게 핸드폰을 넘겼다. 종종 선물을 받아 보았을지라도 아직도 보내는 것은 아내나 아들의 손을 빌려서였다.
성희는 김 권사에게 “목사님에게 이런 것 받아도 되나요”라며 자문했단다. 성희는 젊은이의 용어를 동원하여 나에게 감사를 표했다. 나에게 성희는 아직도 고등학생으로 머물러 있으니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사실 내가 성희의 담임목사라는 사인을 준 것이다.
3월 5일 주일에는 박주형 집사에게 와이셔츠를 선물 받았다. 시장에서 산 셔츠를 입고 사는 데 그나마 닳은 것이 보였나 보다. 명품 셔츠를 선물 받고 여러 생각했다. 주형이는 현재 경찰로 근무 중이다. 얼마 전 나의 주례로 결혼했는데 지금 태중에 아기가 있다.
주형이는 앞의 성훈이와 마찬가지로 짝을 찾음에 있어 나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였다. 이는 신앙적인 면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자신들보다 믿음이 없거나 약한 딸을 짝으로 맞이한 것이다. 두 아들은 모두 믿음을 잘 가지게 하겠다고 약속했었고 이를 지켜나가는 과정에 있지만 바로 부부가 교회의 일꾼으로 사용 받기를 원했던 나로서는 기다리는 아쉬움이 있다.
주형이는 경찰서 수사과에서 얼마 전에 지구대로 발령받았다. 따라서 주일에 당직근무가 걸리면 영상으로 예배를 드린다. 3월 12일 주일이 그런 날이었다. 이날 주형이가 사준 셔츠에 타이를 매고 설교했다. 명품 셔츠보다는 주형이 부부가 골라 사준 셔츠였기에 기분이 좋았는지 설교도 잘 되는 느낌이었다.
청주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는 모주영 청년과도 종종 소통하고 있다. 때로 나의 일기를 읽어주고는 자신의 소감을 밝히고도 있다. 교회 합동 후에 만난 청년이어서 세례는 내게 받지 않았을지라도 주례는 염두에 두고 있다. 그만큼 그 가정과 교회에 소망을 주는 청년이다.
기록하면서 청년들이 우리 교회의 미래라는 생각을 지우지 못하고 있다. 목사만큼 미래를 염려하는 이가 없다. 그 외에 청년자원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중직 일꾼들의 자녀들이 나오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이들이 교회에 나오다가 실족했다면 내가 접촉함이 가능하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는 부모들이 역할을 먼저 해주어야 한다. 말로만 교회의 미래 걱정을 하면서 목사에게 화살을 돌리거나 마치 목사가 나이가 들어서 이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고 여긴다. 젊은 목사가 후임으로 와서 그나마 교회를 힘들게 하는 경우도 흔하게 보는 현상이다.
12일 주일 예배를 마치고 한 권사를 만났다. 남편이 장로로 부부가 교회에서 칭송을 받는다. 그 부부의 자녀가 우리 교회로 와서 교회의 미래를 이끌어주었으면 좋겠다는 의중을 밝혔다. 자녀들이 인천에 살고 있어서였다. 목사만 청한다고 해서 교회가 되는 것이 아님을 설명도 했다.
권사는 자녀가 출석하는 교회에 정착했다고 답하였지만 나의 말을 경시하지는 않았다. 아들 내외와 손자들이 수천 명의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보다는 우리 교회와 같은 곳에서 신앙생활 함도 긍정적인 요소가 많다고 생각하기에다. 교회의 미래를 위해 가장 많이 기도하는 자리를 빼앗기고 싶지 않다. 그래서 이 부분에 대해 집중 기도와 더불어 숙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