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 목사가 돌아간 후 설교원고를 청했다. 이를 고려신학교가 아닌 신대원 출신의 표본 설교로 간직하고 싶어서였다.
아들이 고려신학대학원을 75회로 졸업하고 강도사로 2년을 훈련받았다. 지난 2월 27일에 노회를 통해 응시한 목사고시에 합격하고 4월 10일에는 안수를 받는다. 나는 고려신학교를 졸업하고 1990년 10월 17일에 안수받았다. 이때로 잠시 돌아가니 당시의 감격과 감회가 새롭다.
하지만 아들이 목사안수를 받는다고 하니 그 감격과 감동은 전혀 다르지만 내가 받을 때보다 더한 기대가 든다. 그만큼 주님을 사랑하는 성부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게 된다. 아들에 대한 기대가 있었다. 고신교단에서 나름대로 역할을 하는 교회에서 사역하다가 담임이 되는 것이 그중 하나였음을 아비로서 숨길 수 없다.
그러나 아들은 나와는 전혀 생각이 달랐다. 아들은 스승인 이성호 교수를 찾아가 스스로 배움을 자처했다. 이성호 교수는 광교 장로교회를 설립하고 그 제자인 정중현 목사를 담임목사로 세워 개혁신앙을 파수하는 교회로 정착시켰다.
아들은 신학을 공부하면서 원리를 잘 배웠지만 이를 현장에서 체득하기를 원했다. 말로만의 개혁주의가 아닌 실제적인 사랑이 담긴 따뜻한 개혁주의를 배워 자신의 미래 목회를 전개하겠다는 꿈을 가진 것이다. 그리하여 이를 가장 잘 감당해 줄 교회가 광교 장로교회라고 생각한 것이다.
주님의 절대주권을 신봉하는 나로서는 하나님께서 아들을 붙잡고 역사하심을 감지했다. 그리고 아비로서 마음을 그에 순종함으로 정돈했다. 아들 강도사가 우리 교회에서 서너 차례 설교했었다. 성도들은 고려신학교 출신인 내가 아닌 고려신학대학원 출신인 아들의 설교를 들으면서 여러 생각을 했음을 안다.
당회는 아들의 스승인 이성호 목사를 청하여 설교를 들었다. 이 시간은 아들을 지도한 선생들의 영적 수준을 가늠하는 중한 시간이었다. 아들의 스승인 이성호 교수의 설교를 들으면서 나의 스승인 이상규 교수까지 생각하면서 교단에 대한 애정도 증가가 된 시간이었다.
이어 광교 장로교회의 부목사인 심성현 목사를 청해서도 헌신예배를 드리며 설교를 들었다. 이때도 성도들은 은혜의 도가니에 빠져들었다. 나 역시 놀란 시간이었다. 아들이 강도사로서 선임인 심 부목사와 경쟁까지 하였으면 하고 은근히 바랬다. 이는 배타심이 아닌 성경을 보고 깨닫는 수준의 공유를 바란 것이었다.
이 아들이 안수를 받기 전에 담임목사를 청함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로들의 생각도 같았다. 감사하게도 청을 받은 정 목사가 기꺼이 허락하여 3월 12일 남전도회 헌신예배 강사로 왔다. 사전에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빌 2:1-11)이란 제목을 받았다.
정 목사는 광교 장로교회와 관계된 신상훈, 이성호, 심성현 목사에 이은 마지막 강사 목사였다. 성도들은 정 목사가 담임목사이기에 은근히 더한 기대를 하고 있었다. 정 목사는 그가 왜 담임목사인가를 보여주었다. 한 마디로 은혜의 강수가 풍성한 시간이었다.
수일 전 교단의 대형교회 목사의 강의인지 설교를 들으면서 아팠던 마음을 모두 정 목사가 씻어내 주었다. 이성호 교수가 예상하지 못한 일로 아픔을 겪었을지라도 그는 여전히 우리 교단에서 귀한 학자 목사요 거장이라고도 생각했다.
이런 정 목사와 같은 제자를 발굴하여 담임으로 세웠다는 자체만으로도 그러했다. 게다가 심성현 목사와 신상훈 강도사까지 인도하는 것을 보면 거목으로서 손색이 없다고 여겼다. 정 목사가 돌아간 후 성도들의 반응이 곧바로 나에게 도착했다.
당일에 아내는 아들의 담임목사가 왔다고 힘든 중에도 오후 예배까지 드렸다. 앞으로 아들의 거취를 논하면 정 목사와 심 목사와 같은 목사로 성장해가고 있음을 긍지로 여기라고 할 판이다. 정 목사가 돌아간 후 설교원고를 청했다. 이를 고려신학교가 아닌 신대원 출신의 표본 설교로 간직하고 싶어서였다. 한 권사가 보낸 문자를 통해 당일의 은혜받은 기쁨을 기록으로 남기고자 한다.
“처음 신앙생활 할 때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성경 공부하던 시절이 생각났습니다. 그때는 성경 공부나 설교 말씀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열심히 듣고 기쁨으로 봉사하며 서로가 한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했었지요. 오늘 정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면서 이성호 목사님과 심성현 목사님 그리고 신상훈 강도사님과 정 목사님께서 모두 훌륭한 설교자라고 생각했습니다. 제시된 성경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전하시고자 하는 뜻을 찾아 전함에 최선을 다함을 느꼈습니다.
보통 오늘 본문의 설교를 들으면 예수님처럼 사랑하고 겸손하며 희생하라고 등의 말씀을 들었는데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긴 주님께서 하나님을 낫게 여겨 순종했고 우리를 낫게 여겨 대신하여 죽었다는 부분에서 눈물이 났었습니다.
지금은 더 사모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주안에서 한마음으로 나보다 남을 더 낫게 여기는 주님이 기뻐하시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나 저 자신을 돌아보며 반성도 하고 감사도 하는 정말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정중현 목사님처럼 귀한 목사님과 함께 사역하시는 신 강도님은 축복을 많이 받으셨네요. 두 분의 젊은 귀한 사역자들이 계셔서 고신교단의 미래가 소망이 있어 보입니다”
대리만족이란 것이 있다. 정중현 심성현 목사에 이어 신상훈 강도사 그리고 아직은 나보다 길게 사역할 이성호 교수 등이 있으니 나의 다가올 은퇴가 아쉽거나 미련이 남지는 않는다. 동시에 그날까지 최선을 다하여 주님의 종으로 살자고 다짐하는 시간이었다. 정 목사와 같은 이가 후임으로 찾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히 든 복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