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이날 손자를 안아주었던 것이 좋고 행복했다. 그만큼 오리를 먹지 못하였을지라도 대수가 아니었다.
어느 목사가 손자를 보았다. 강단에서 설교할 때 손자 이야기가 주를 이룬 것이 서서히 늘어갔다. 하나둘 손자가 더해지자 손자 이야기가 더더욱 등장했다. 이에 성도들은 식상을 했다. 강단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는 곳임을 알기 때문이다.
내가 손자를 보게 되면 이런 점에서 절제해야 함을 가슴에 새겼다. 평생 목사로 산다는 것에 오점을 남기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이를 현저하게 줄임이 중요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사실 아들 하나만을 낳은 것도 같은 이유가 있었다. 상기 목사가 자녀가 머리가 따라주지 못함에도 유학 등을 보냄에 교회를 이용하는 것을 보고서다.
아들이 세 살 때 1층 식당에서 올라오는 돼지갈비 냄새에 그 고기를 사내라고 해도 사주지 못했다. 교회 개척의 시기는 그리 지났다. 이런 아들이 아들을 낳아 곧 돌이 되니 세월은 흘러간다. 그래서 나는 할아버지가 되었고 아내는 할머니가 되었다.
할아버지가 무엇인가를 생각할 여가도 없이 아내에게 찾아온 암이라는 손님으로 요즈음은 손자를 만나 볼 여가가 없다. 아내도 초기에는 자주 손자 보러 가는 일이 있었는데 지금은 자신의 건강회복을 위해서 매진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아들 내외도 자주 보지 못하고 있다.
아내가 4차 항암을 마쳤다. 8차 중 중간을 통과한 것이다. 여기까지도 주님의 은혜로 생각한다. 그만큼 주님의 인도가 보였다. 아내 자신이 “여보, 내가 믿음이 있어서 그나마도 잘 견디고 있나 봐요”라고 전했다. 이를 들으면서 주님의 은혜에 크게 감사했다.
아내가 해야 할 일중 식사를 잘 해야 한다. 그것도 암을 극복할 만한 음식을 먹어야 한다. 이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한 날 아내가 오리고기가 먹고 싶다고 했다. 치료를 시작하면서 내가 배달을 해줄 수 있는 순대나 떡볶이를 찾은 일은 있지만 오리는 처음이다.
3월 10일 금요일에 아들 내외가 왔다. 아내가 먹고 싶다는 오리를 먹으려면 물왕리까지 가야 한다. 아들 내외와 함께 만나면서 손자도 모처럼 보고 식사도 같이 먹고 싶었다. 아들이 운전을 해주니 나도 편했다. 도착해서 오리를 실컷 먹었다. 아내는 치료를 시작한 올 초부터 계산하여 이렇게 잘 먹은 것은 처음이라고 했다.
아들이 제 엄마가 먹고 싶다고 하니 사실 스스로 왔다. 그렇게 식사를 잘 마쳤다. 그런데 아들이 계산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아직은 강도사 신분이니 어려움이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 내가 계산을 했지만, 이날은 아내가 잘 먹어주었고 손자도 보았기에 기분은 좋았다.
사실 아들 내외가 잘 먹으라고 나는 대충 먹고는 손자를 보아주었다. 이때 나의 아버지를 생각하기도 했다. 아버지는 자식이나 어머니보다 자신 위주로 사신 면이 있다. 이를 대하면서 나는 자식이나 손자를 보면 아버지처럼 하지 않아야겠다는 마음을 굳혔다.
다른 사람에게는 참 잘하면서 가족에게는 소홀했던 아버지였다. 당연히 어머니에게는 이런 점이 아쉬움으로 남았었다. 식사하면서 30여 년 전을 생각했다. 아들에게 갈비를 사주지 못하였던 때다. 도중에 아내가 외식하자고 하면 한마디로 잘랐던 때로도 돌아갔다.
그렇게 살았기에 선교와 구제에 흉내라도 내면서 살았다. 이를 아내와 성장한 아들도 알고 이해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서운했던 것도 알고 있다. 이제라도 아내와 아들에게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사주려고 한다. 이런 시간을 가지면 아내가 행복해하니 더욱 그러하다.
식당 주인이 나를 알아보았다. 우리 가족에게 자신이 커피도 대접하겠다고 제안했다. 커피는 분명히 별도의 계산을 해야 한다. 그 여주인은 나에게 “정말 오랜만에 오셨네요. 전에는 자주 오셨는데요.”라더니 다른 카페에서 고가의 커피를 마시느니 밖에 날씨가 좋으니 맛난 커피를 마시라고 했다.
과거 즉 코로나 전에는 노인 성도들과 한 달이 멀다 하고 자주 찾았던 식당이었다. 노인 성도들과 찍은 사진 중 이 식당 배경이 가장 많을 정도이다. 이제는 이곳까지 가자고 해도 버거워하는 노인 성도들이 되었다. 아내에게 이를 전하니 자신의 연령대가 노인이니 종종 오자며 웃었다.
목사로 산다는 것과 그리고 남편과 아버지 혹은 할아버지로 산다는 것이 배역이 다름을 알게 되는 하루였다. 그래도 이날 손자를 안아주었던 것이 좋고 행복했다. 그만큼 오리를 먹지 못하였을지라도 대수가 아니었다.
아들부부가 손자를 잘 키우고 있음이 확연하게 보인다. 사랑이 매개였다. 아내와 내가 아들을 그리 키운 것을 알겠지? 성도들에게 자식이 이쁘면 부모를 생각하고 용돈을 드려 효도하라고 가르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