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보내준 하늘 사자 임에 틀림이 없다. 초원교회가 받은 복이기도 하다.
고려신학교 42회이다. 이제 동기들이 은퇴의 시기가 다가온다. 이미 천국에 간 목사도 있고 은퇴한 목사도 있다. 고신교단과 합동하였어도 신학교 기수는 같다. 따라서 동기의 수는 많아졌지만 그야말로 42회란 것 외에는 큰 의미가 없다. 사촌보다 이웃사촌이 더 가까운 것으로 설명된다.
나의 위치가 이 정도가 되니 선배보다는 후배가 훨씬 많다. 현직에서 사역하는 목사들의 대다수가 후배 군에 속하는 것이다. 이런 즈음에 우리 교회에 스승이자 선배인 김장진 목사가 교육 목사로 사역을 해주는 것은 나에게 행복이다.
무엇보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통해 교훈을 받는 것이 많아서다. 한번 스승은 영원한 스승이다. 그런데 이것이 웬일인가? 김 목사는 나를 담임목사로 여기고 받든다. 사실 주일마다 노인 성도들과 마주 앉아 식사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인가 노인들의 수가 좀 늘면서 자신들끼리 대화하며 식사함을 즐긴다.
이런 즈음에 김 목사가 부임함으로 주일에 두 목사가 함께 식사한다. 성도들에게 이미 양해를 구한 바다. 수요일과 새벽기도 시간에도 자주 김 목사를 만나지만 대화할 시간이 없어 주일에 점심을 같이 먹으면서 대화한다는 것을 알린 것이다.
두 목사가 주일마다 편하게 식사하고 대화한다. 교회와 교단의 소식을 나누면서 사역을 정돈하는 시간이다. 7월 24일 주일에도 이전과 같이 대화의 꽃을 피웠다. 김 목사는 7월 20일 수요일에 우리 가정에서 이사 감사예배 설교를 했다.
마치고 식사까지 하니 오후 1시 정도가 되었다. 오후 7시 30분에는 수요예배 설교를 김 목사가 감당한다. 김 목사는 교회에 가서 시간을 가짐이 필요했다. 내가 강권하기를 내 집무실에서 에어컨을 켜고 쉬라고 청했다. 필요하면 컴퓨터 작업도 하라고 권했다. 평소 김 목사는 나의 집무실을 찾아서 인사만 나누고는 나가서 맡겨진 일에 전념한다.
김 목사는 20일에는 나의 집무실을 이용했다. 주일에 대화하면서 안 일이다. 김 목사는 나에게 어느 목사의 설교집을 아직도 가지고 있는 이유를 물었다. 최근에 이사하면서 이 설교집을 교회에 가져다 놓은 것을 본 것이다. 바로 답을 주었다. 주저함이 없었다.
내가 고려 교단의 역사를 연구하였고 자주 원고청탁을 받기에 그의 설교집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했다. 김 목사는 바로 나의 말을 이해했다. 그 목사는 설교집에 자신의 간증을 담았고 반 고소에 대한 언급도 자주 했다. 모두가 연구가 필요한 언행이어서 그 자료로 반드시 그 책이 필요한 것이다.
김 목사는 자신은 설교집은 다 처리했다고 했다. 혹시나 해서 ‘아가 서’ 주석을 한 권 정도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김 목사의 말을 전해 들으면서 마음이 아팠다. 누구보다도 고려 교단과 특별히 신학교를 위해 헌신했던 교수였기 때문이다. 그 지도자를 훌륭한 목사로 알고 동역하되 죽기까지 충성하는 정도였음을 알기 때문이다.
이런 귀한 교수 목사가 지금은 나의 동역자로 헌신하고 있으니 나로서는 기쁨이고 영광이다. 감사뿐이다. 김종선 목사를 처음 만났을 때 그 역시 그 목사의 책은 한 권도 예외 없이 버렸다고 했다. 이런 아픔과 결단은 두 김 목사에게 국한되지는 않을 것이다.
김장진 목사가 한동안 새벽 설교를 인도해주었다. 부산을 오가며 강의하니 나는 물론 성도들에게도 크게 유익했다. 게다가 수요일은 아예 김 목사가 설교를 도맡아 감당했다. 여러 비유에 대한 말씀과 룻기서 그리고 호세아서를 통해 은혜를 받고 있었다.
이제 주일에도 좀 감당해달라고 청했다. 이때 김 목사는 단호하게 ”주일에는 담임목사님을 통한 양식이 공급되어야 합니다. 저도 성도의 한 사람으로 은혜를 받고 있습니다“고 답했다. 제자인 내가 담임목사이니 주일에는 나의 설교로 성도를 이끌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다.
김 목사는 혹시 내가 다른 사정이 생긴다면 그때는 자신이 설교하겠다고 여지를 남겼다. 김 목사는 19일 화요일에 제자인 장효숙 목사를 만났을 때 나의 검소한 생활에 대해 무척이나 강조했다. 자신에 대해서는 절약 정신이 몸에 배어 있으면서 선교비 지출은 과감하게 한다는 것이다.
성도들에게는 어디에 가서 우리 담임목사와 같은 설교를 들을 수 있겠느냐고 전하면서 교회에 대한 긍지를 가지게 한다. 이런 스승 목사가 교육 목사로 동역자가 되니 내가 가지는 행복과 유익이 한두 가지 정도가 아니다. 그중 하나가 더 있다면 김 목사의 초원 사역으로 그 지도자가 나를 음해한 것이 모두 자신에게 돌아가고 있음이 보인다.
김 목사의 동역자들과 제자들이 그가 우리 교회에서 사역하니 자연스럽게 나에 대한 음해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마음이 아프다. 김 목사는 그 목사가 제대로 했다면 한국교회를 위해 크게 공을 세웠을 것이라며 안타까운 심정을 숨기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