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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양수필 ::

- 주님의 나라에 이방인인 우리가 참여한 것은 축복이다. 이 축복은 주님의 지상명령이 준행될 때 보장이 되고 유지가 된다.

마태복음 28:16-20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자신의 보혈로 사하고자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신 이후의 기록이다. 곧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이전의 사역이다. 예수님께서 이때 유언과 같은 지상에서의 마지막 말씀을 남겨 주셨다. 이 마지막 예수님의 명령은 그 의미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분명히 커다란 의미를 주고 있다. 특히 예수님의 이 마지막 명령은 구약 성경의 예언을 성취한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이후에도 자신의 사역을 통해 끝까지 구약 성경의 예언을 성취하셨다. 그래서 오늘 읽은 예수님의 마지막 명령을 이해하려면 먼저 구약 성경에 관한 깊은 이해가 있어야 한다. 구약과 신약은 동전의 앞면과 뒷면처럼 결코 분리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창22:18절을 보면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하여 두 가지를 깨달을 수가 있다. 하나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했다는 사실이다. 곧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이행하였다. 그리고 교회는 이것을 순종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바로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순종하였다.

다른 하나는 이 순종으로 인하여 천하 만민들이 복을 받게 되었다. 이것이 두 번째 사실이다. 아브라함으로 인하여 세상 모든 사람이 복을 받게 된다는 말씀이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복’이란 원어 ‘바라크’ 는 ‘무릎을 꿇다’, ‘송축하다’란 의미이다. 곧 하나님을 찬양하고 송축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복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복이다. 또한 하나님께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하나님께 은혜를 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창세기의 이 말씀은 아브라함의 순종으로 인하여, 그리고 아브라함의 씨 곧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인하여, 세상 모든 이들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드리기 위해서, 하나님께 무릎을 꿇게 될 것을 강조한다. 그리고 오직 하나님께 무릎을 꿇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게 될 것이다.

창세기에 나온 ‘씨’란 단어는 ‘자손’이란 뜻이다. 그리고 신약성경이 시작되는 마태복음 1:1에서 바로 이 ‘아브라함의 자손’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

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한 사람을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 고 했다(갈 3:16).

사도 바울은 창세기를 아주 상세히 말하고 있다. 바로 ‘자손’과 ‘자손들’을 구별하고 있다. 성경은 정확하게 ‘아브라함의 자손’ 곧 단 한 명을 의미한다. 그리고 갈라디아서는 그분이 바로 예수그리스도임을 증언하고 있다. 갈라디아서를 조금 더 살펴보면, 사도 바울은 갈 3:13,14을 보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저주를 받은 것은 바로 아브라함의 축복을 이방인에게도 미치게 하고자 하신 것이라고 한다. 곧 아브라함의 축복은 천하 만민에게 미쳐야 한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이 축복을 천하 만민에게 주시고자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것이다. 또한 이것은 ‘성령의 언약’을 주시고자 하신 것이다.

사도 바울이 사용한 ‘복’이란 말을 보면 헬라어로 ‘찬양’, ‘찬사’의 뜻을 가진 ‘율로기아’이다. 그리고 이를 종교적인 의미에서 ‘축도’라고 번역한다. 곧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축복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그 자체이다. 하나님께 축복을 받고, 은혜를 받았다는 것은 바로 하나님 앞에 겸손히 무릎을 꿇고 오직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 그 자체가 축복이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 세상 모든 사람을 하나님께 예배드리게 하려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것이다.

사도 바울은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축복이 우리 이방인에게 미쳤다고 한다. 그리고 또한 믿음으로 성령의 약속을 받았다고 분명하게 가르치고 있다(갈 3:14). 성령을 받아서 기적과 이사를 행하고 돈을 벌고, 시험에 합격하는 것이 아니다. 성령을 받아서 바로 예배를 드리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예배란 ‘영과 진리’로 드리는 것이라고 하셨다(요 4:24). 여기서 ‘영’이 곧 성령이다. 성령이 없으면 예배를 드릴 수 없다. 그래서 성령을 주시는 것이다. 그리고 성령을 받은 증거가 바로 지금 내가 예배를 드리고 있다는 이 분명한 사실 자체이다. 그리고 이것은 바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바로 그 축복이다. 그래서 예배는 축복이다. 비록 세상이 추구하는 기적과 이사는 없다 해도 하나님의 약속이 있다. 그것이 축복이다.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을 성취하시기 위해 예수님께서 위임명령을 주셨다. 마 28:19.20에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고 했다. 아브라함의 축복, 곧 세상 만민이 하나님께 무릎을 꿇는 것은 예수그리스도의 보혈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아직도 우리 주변에는 예수를 믿고 하나님께 예배드리지 않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말씀을 하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기 전에 유언처럼 그 마지막 말씀을 11명의 사도에게 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에게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가 있음을 선포하신다(마 28:18). 이는 예수께서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셨기에 받은 권세이다. 예수님은 이 영원한 권세로 11명의 사도에게 명령하셨다.

첫 번째 명령은 가라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로마의 칼 앞에서 두려워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세상으로 가라고 말씀하신다. 이것이 제자들이 세상에서 첫 번째 해야 할 일이다. 우리는 본질적으로는 세상에 사는 사람들이 아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사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이제 세상으로 나아갈 것을 요구받고 있다. 왜냐하면 제자삼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세례를 베풀기 위해서이다.

두 번째 명령은 제자 삼아서 세례를 베풀라는 것이다. 그럼, 왜 제자 삼을까? 성경의 원문을 보면, ‘제자를 삼아라’와 ‘세례를 주어라’ 사이에 접속사가 없이 바로 이어서 말씀하고 계신다. 곧 동시동행적인 사건이다. 다시 말해서 제자 삼았으면 세례를 받게 해야 한다. 그리고 세례를 받았으면 바로 제자란 것이다. 모든 세례 교인들은 바로 예수님의 제자들이다. 그리고 이것은 바로 성도가 가장 아름다운 축복을 받았다는 증거이다.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고 하셨다. 이는 이제 더이상 유대인과 이방인의 차별이 존재하지 않음을 뜻한다.

‘제자를 삼아’란 말은 `제자를 만들라'는 강한 명령으로서 가르치고 훈련시키라는 의미이다. 진정한 제자들은 예수의 가르침을 듣고 이해하고 순종하는 자들이다(마 12:46-50). 한편 이와 더불어 제자는 선포와 응답을 모두 필요로 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제자를 삼아’라는 말속에는 회개의 신앙을 이끌어 내는 복음의 선포가 은연중에 내포된 것이다. 이 제자 직에 대한 응답은 세례를 받고 가르침을 받는 일이다. 이러한 사실은 지상명령에서 주어진바 `가라', `세례를 주라',`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단어가 모두 `제자 삼으라'는 본동사의 보조 역할을 하는 분사형을 취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더욱 확연해진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고 하심은 이곳이 처음이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세례가 처음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베풀어지다가(행 2:38; 8:16; 10:48; 롬 6:3; 고전 1:13,15; 6:11; 10:2).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이 점차 아버지, 아들, 성령의 이름으로 확대되었음을 알 수 있다. 예수의 이름으로 주는 세례와 삼위 하나님의 이름으로 주는 세례는 공존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성 삼위의 조화로운 협력이 있었다는 사실이다(마 3:16,17) 초대교회에서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하더라도(행 8:16; 10:48) 그것이 창조자이시요 섭리자이신 성부 하나님과 죄를 고백하게 하시며 위로하시는 성령의 권위와 실체를 이미 전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세 번째 명령은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것이다.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이고 또한 우리가 제자를 삼아야 하는 것은 그 제자로 하여금 예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지키게’ 하기 위한 것이다. 이것은 세상의 모든 민족과 사람들이 성자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그대로 살 것을 요구하고 계시는 것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교회의 첫 번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 그다음은 능력을 행하는 자요, 그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그다음은 돕는 은사, 다스리는 은사, 각종 방언이라고 했다(고전 12:28). 우리는 사도나 선지자는 될 수 없다. 그러나 교회의 교사가 될 수 있다. 이것은 최고의 은사이다. 바로 성경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는 교사이다.

신학자들은 이 본문을 위임명령(대임명령)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바로 아브라함의 축복을 예수님께서 성취하셨으나 실현시키는 방법으로 ‘제자를 삼으라’라는 혁명적인 방법을 사용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제자가 있나? 우리를 통하여 누군가 세례를 받았나? 이것은 성부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주신 명령처럼 성자 하나님께서 새롭게 거듭난 우리에게 명령하고 계신다. 너희들은 축복의 통로가 되어 아브라함의 축복이 천하 만민에게 미치도록 ‘가라’, ‘제자 삼으라’ ‘세례를 베풀라’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하신다. 이것은 우리의 순종을 시험하시는 말씀과도 같다. 우리는 축복의 통로가 되어 세상 모든 이들이 하나님께 무릎 꿇도록 제자 삼아야 한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렇게 열심히 전도했던 것이다.

제자에겐 스승이 있다. 우리의 스승은 누구인가? 우리가 진정 사도들처럼 예수님께 직접 배웠나? 아니면 우리에게 예수를 가르쳐주고 성경말씀대로 살도록 가르친 사람이 있나? 바로 출석하고 있는 교회의 목사이다. 그는 예수님의 명령대로 우리를 가르치고 성경대로 살 것을 요구한다. 우리는 목사의 제자들이다. 목사를 통해 전해지고 가르쳐지는 말씀을 잘 배워야 한다.

그리고 우리도 이제 세상으로 가서 제자를 삼아야 한다. 세상에 나아가 무조건 교회에 끌고 오거나, 지하철에서 고함을 치는 것은 엄밀히 말해 전도가 아니다. 제자를 삼아야 한다. 바울이 디모데를 가르친 것처럼 스승과 제자가 되어야 한다. 그를 가르쳐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먼저 배워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래야 가르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이 세상이 끝나는 그 날까지 예수님께서는 바로 우리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 되신 분이기 때문이다(마 1:23) 예수님께서는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신다고 했다. 가는 자에게다. 제자를 삼는 자에게다. 세례를 베푸는 자에게 이다. 그리고 가르쳐 지키게 하는 자에게 이다. 이를 확신한다면 담대함으로 축복의 통로가 되어야 한다.

이방인 기생 라합이 믿음으로 주님의 나라의 중요한 일원이 되었다. 이어 룻을 통하여 유다지파가 지켜지게 했다. 이들은 다윗의 조상이 되었고 그를 통해 예수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셨다. 주님의 나라에 이방인인 우리가 참여한 것은 축복이다. 이 축복은 주님의 지상명령이 준행될 때 보장이 되고 유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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