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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신과 고려의 합동은 신 목사가 그 첫 단추를 꿰었다고 해도 틀린 평가는 아닐 것이다.

 

74일 목요일에 조석연 목사와 오찬을 함께 했다. 수일 전에 조 목사가 전화를 걸어 나와 양향모 목사 그리고 김승현 목사와 식사를 하자고 했다. 연락을 나에게 해 달라는 것이었다. 모두가 바삐 지내고 있지만 82세의 대 선배 원로 목사의 요청에 맞추는 것이 도리라 여겼다.

 

조 목사는 정서진이란 곳에 24층 전망대가 있다며 그리로 오라고 했다. 기억을 더듬으니 한참 전에 조 목사와 커피를 마신 장소였다. 먼저 도착하여 차안에서 책을 읽고 있다가 조 목사가 주차하는 것을 확인하고 바로 따라나섰다.

 

건물에 들어서니 양 목사가 김 목사와 함께 들어섰다. 양 목사가 오면서 김 목사를 픽업한 것이다. 양 목사의 평소 성품이 이런 픽업하나만 보아도 드러난다. 조 목사의 안내로 24층에 올라갔다. 조 목사는 스파게티 전문점으로 안내를 한 것이다.

 

평소 자주 대하는 음식이 아니다. 그리고 내가 생각한 것보다는 고가였다. 아무래도 정서진에 24층 전망대라는 값이 부가가 되었을 것이다. 조 목사는 목회를 오래 했고 연세도 지긋하다. 게다가 삼성그룹의 임원인 아들을 두고 있으니 나름대로 이런 곳에서 사모와 함께 회상의 시간을 가지는 것도 좋다고 본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여전히 어려운 중에 살아가는 성도들과 함께 목회를 하고 있는 담임목사이다. 아내와 함께는 물론 그 누구와도 내가 대접을 하면서 출입하기는 좀 부담이 되는 장소였다. 그래도 이날은 어른 목사가 청을 했으니 기쁘게 동참을 했다.

 

식사를 하면서 여러 대화를 했다. 우리는 만나면 대화의 주제가 한정된다. 교회와 교단 그리고 목회에 관한 것이다. 그런데 그 대화의 폭은 대단히 넓다. 이유가 있다. 2001년에 고려교단을 떠나 고신교단으로 합동했다. 그리고 서경노회가 만들어졌다.

 

이때 주역 6인방 중 4인이 모인 것이다. 그중 한 사람인 이길봉 목사는 이미 천국에서 마음 것 풍성한 삶을 누리고 있다. 추경호 목사는 안산에서 목회를 하고 있어 이날 인천에서 목회하는 4인방만 모이게 된 것이다.

 

우리 4인이 속한 인천노회는 아직은 안정을 찾지 못한 기분이다. 걱정할 정도는 아닌지 몰라도 아직은 선후배간의 질서나 등의 문제에서 불협화음이 보인다. 기존의 고신교단에 서경노회 그리고 고려교단이 합류하여 섞이다보니 그럴 것이다.

 

10월에 양향모 목사가 노회장이 된다. 이때는 여러 많은 부분에서 안정화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양 목사에게는 보이지 않는 리더십이 있다. 분명한 것은 영적인 힘이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상대방을 이해해주려고 애쓰는 면이 탁월하다. 이런 그가 노회를 이끌어갈 때 긍정적인 변화가 예상되는 것은 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이날 만나러 가는 중에 이상규 교수와 상의를 한 것이 있다. 바로 이번에 출간하려고 하는 고신원로와의 대화에 조석연 목사를 포함하는 것으로다. 이 교수는 조 목사가 이에 들어가는 것은 당연하다는 반응이었다. 역사학자의 탁월한 감각에서 즉답이 온 것이다.

 

조 목사에게 이 교수의 의중을 전했다. 듣고 있던 동료 목사들도 나의 의견에 힘을 실어주었다. 조 목사와의 대담에서 중요한 것은 서경노회와 관계된 것이기 때문이다. 조 목사는 우리보다 석원태 목사와 깊은 관계가 있다. 그와 거의 동시대에 고려교단에서 일을 했다는 의미다.

 

따라서 역사를 바로 정립하고자 하는 대담에 조 목사는 대단히 중요한 증언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조 목사의 평소 성정은 이런 것에 거리를 두는 목사로 안다. 하지만 후배들의 청에 조 목사는 인터뷰에 응하기로 했다.

 

당일 간단간단하게 전해주는 말들을 나는 폭넓게 듣고 있었다. 당시의 역사를 훤히 알고 있기에 그러했다. 조 목사는 짧게 설명했지만 나는 당시에 의문스러웠던 부분들이 뻥 뚫리는 소득이 있었다. 이날 만남은 조 목사의 청으로 이루어졌지만 나에게 그리고 나아가 교단에 별도의 소득이 있었던 날이다. 잊혀 질 뻔했던 역사가 공개되기 때문이다.

 

식사는 조 목사가 대접을 했다. 하지만 아래 1층으로 이동하여 커피는 내가 섬겼다. 24층의 커피대금보다 1층은 절반이나 저렴했다. 조 목사가 고려교단의 총회장을 감당하고 선두교회 담임목사였을 때는 만나기 어려운 존재였다.

 

그러나 요즈음은 그가 나와 동료들을 수시로 청한다. 언젠가는 나도 은퇴하고 이런 입장이 될 것이다. 현직에서 사역을 할 때 후배들에게 더 심어야 한다는 마음이 든다. 요즈음 만남의 폭을 넓히는 이유가 된다. 어느 불의한 목사로 인해 잃었던 자유를 이제 회복했다. 고신과 고려의 합동은 신 목사가 그 첫 단추를 꿰었다고 해도 틀린 평가는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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